죽기 전에 스쳐지나가는 파노라마, 찰나의 기쁨으로 채워보기
거의 죽음의 문턱에 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 있다. 지나온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불현듯 머릿 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최근 과학 저널에서도 이런 현상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하니, 인류가 공통적으로 겪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하루 일과도 1분의 영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무수히 이어붙이면 매우 의미있는 영화, 작품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영상을 더 이상 줄일 수 없을만큼 짧은 길이로 압축한 각자의 이름으로 만드는 것, 개인의 경험 안에서 가장 유의미한 순간을 스스로의 두뇌가 편집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생하는 것 그것이 일생의 파노라마이다.
각자 주어진 인생의 길이는 다르지만, 죽기 전에 인간에게 허락된 파노라마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각자의 과거 중 좋은 부분만 필름으로 잘라서 이어붙인 기억을 담아두고 힘이 들 때 선물처럼 꺼내어본다. 아기가 위안을 찾으려고 엄마 품에 안기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은 이런 것이다. 죽기 전에 파노라마 영상을 가득 채우고 싶은 좋은 사람, 좋은 풍경이 함께 어우러진 찰나의 순간을 끊임없이 선물해준다.
평일은 바쁘다. 어른에게는 직장으로, 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고, 아이에게는 학교에서 미래를 위해 갈고 닦아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 일과 의무는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마음을 지치게 한다. 집에 돌아오더라도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이렇게 비즈니스 아워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떨어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하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다. 비행기 떠나는 순간 시간이 말한다. "잠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데려다줄테니, 의무와 속박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으라고." 누구나 하늘에서의 비행을 설레는 순간의 백미로 떠올리는 이유이다. 구성원을 여기 저기에 흩어놓았던 일상을 던져놓고, 여행은 좋아하는만큼 기꺼이 붙어있으라고 말한다. 혼자 여행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의무라는 테두리 안에 맞게 눌러 담아놓았던 자아를 펴놓으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 마음껏 놀고 마음껏 잠자고 마음껏 먹으면서 구겨졌던 몸과 마음을 당당하게 펴보라고 말한다.
힘이 들고 지쳐 가끔 잠이 오지 않는 20대의 어느날, 스스로 걸어주는 수면 의식이 있었다. 그 상상만 하면 아무리 스트레스가 많던 날도 마음은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다. 할머니의 손길로 토닥 토닥 배를 쓰다듬어주면서, 빛나는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을 맞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잔디밭에 피크닉을 떠나 하늘을 보며 웃음짓는 상상을 하면 난 스르륵 잠에 들곤 했다.
여행은 사랑하는 '우리'만 존재하는 세상으로 데려다준다. 비행기는 타임머신처럼 시간을 멈추어주고, 현지에 도착하면 전혀 또 다른 차원의 시간이 나를 반긴다. 숙제도 의무도 잠시 멈춘 곳에서 낯선 주변을 둘러보며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물음표를 던져본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과 상상 속에 그리던 곳에 가보고 상상 속에 먹어봤던 음식을 먹는다. 물론 그 속에서도 걱정은 걱정대로 남아있겠지만, 여행을 떠난 잠시의 시간동안은 비누방울 속에 걱정을 꼭꼭 잠궈 놓을 수 있었다.
"죽기 전에 인생의 파노라마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들어있을거야" 라는 찰나의 기쁨이 새록새록 찾아오는 그것이 여행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