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8살 아들에겐 취미가 생겼다. 엄마와의 공부 약속을 완수해서 받은 포인트들을 알음알음 모아 편의점과 문구사에 가서 사고 싶었던 것을 사는 것이다. 갖고 싶은 물건을 돈과 교환하는 짜릿한 기쁨을 맛본 아들은 공부에 더욱 화이팅하며 여세를 몰아부쳤다. 하루는 아들과 도서관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짬이난 틈에 포인트를 쓰게 해달라고 해서 편의점에 갔다. 포켓몬 빵이 있냐고 점원에게 아들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점원은 아들이 민망해하지 않게, 포켓몬 빵은 없지만 좋아할만한 포켓몬 굿즈가 든 에그가 있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1500원짜리 포켓몬 빵 속에 든 띠부띠부씰이 5만원 넘게 거래가 되기도 하고, 편의점 오픈런으로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희귀한 현상이 생겼다. 포켓몬 빵의 품절 사태는 기사로 많이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편의점에 와보니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159종의 포켓몬 중 자신이 좋아하는 띠부씰이 나올 확률을 베팅하듯 긴 줄을 서는 광경,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설은 문화현상일 것이다.
세대는 달라도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고보니 나의 학창시절에도 하굣길을 즐겁게 해주던 존재가 있었다. 우표뽑기였는데, 오늘은 어떤 우표들이 나올까 상상만 해도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새로 득템한 우표를 앨범에 정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세월이 흘러 나의 아들도 수집광이 되었다. 포켓몬 카드 앨범만 몇개를 갖고 있더라도, 천원짜리 포켓몬 카드 봉지만 봐도 웃음이 넘쳐흐른다.
포켓몬 카드를 수집하는 아이에게 왜 또 샀던걸 또 사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해봐야 잔소리라서 마음의 미동도 없겠지만, 수집 열병을 더 세게도 앓아본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갈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수집의 차원이 달라졌다. 포켓몬빵 열풍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번 '낯설게' 생각해보자. 나 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우표를 모으고 집에서 혼자 흐뭇해하기만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 요즘 세대는 너무 다르다. 각자의 포켓몬 카드 컬렉션을 들고 나와서 서로 트레이드하기도 하고, 반짝이는 카드 앞에서 우쭐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 카드가 뭐라고, 종이 한장일 뿐인 것을, 돈 아깝다고 생각하면 아이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 포켓몬 카드/포켓몬 빵으로 아이들이 유괴에 노출되는 충격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다. 요구르트 준다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옛날에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포켓몬 굿즈 수집은 단순 종이/스티커의 차원을 넘어선다. 포켓몬 열광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모습에 물음표를 던지니, 나름의 배움이 된다. 포켓몬 빵에서 원하는 씰을 발견하는 재미는 '갓생'사는 젊은 인생들의 낙이기도, 희귀함을 돈으로 바꾸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넓지만, 가장 심오한 배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을 낯설게 보는 데 있다. 익숙한 것을 뒤집어보면 배움이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여행은 낯설음이라는 해일 한가운데 내 몸을 던지는 것이다. 친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마치 모든 것을 합의로 이뤄낸 구성원들 속에 나만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5천만 단일민족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살아가다가, 천연 컬러의 다른 인종 속에 도드라진 점으로 떠오르는 것이 여행이다. 하지만 낯설음이 이상하게도 편안함이 되고 자유로움마저 준다. 낯선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피곤함 그 자체일 수 있지만, 피곤함을 자처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다. 타인에게는 당연함이 나의 렌즈에서는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변한다. 새로운 각도와 시선으로 신선함을 주고, 다양함 속에서 생각을 툭툭 깨우는 여행을 반복하다보면, 집단주의 삶 속에서의 혐오가 포용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부부가 여행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에게 꼭 스스로 시도해보게 하는 한가지가 있다. 호텔 룸키를 건네면 아이가 우리를 이끌고 스스로 객실을 찾아가 룸키로 문을 열어본다. 어제는 터치하는 방식이었는데, 오늘은 방문 앞에서 갸우뚱하고 한참을 생각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다가 아하!의 순간이 오면 결국 성공한다. 슬롯 안에 넣었다가 빼면 열리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매번 전자식 키였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쇠로 된 옛날 열쇠를 건네 받기도 한다. "세상 문을 여는 방식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아이는 살아있는 경험으로 배워간다. 아이가 나잇밥을 먹을수록 문 여는 기술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묘미이다. 익숙함에 물음표를 던지고, 다르게 바라보면 문제가 풀린다. 다름과 시도의 연쇄적 작용, 여행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