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히키코모리의 행복

by 러닝뽀유

코로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였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비즈니스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둔 신문이 있었다. 두바이 일간 신문이었다. 비즈니스와 1도 관련이 없지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외국 신문을 읽는게 로망이었던 나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쳐들었다. 헤드라인만 슬쩍 보고 넘어간 1면 신문기사는 그로부터 몇달 이후 문득 생각이 났다.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바이 콘라드호텔

미국 동부로드트립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 동부를 차로 1달 반, 미국 서부를 한달 반, 유럽을 한 달, 제주 한달살이 등 짧고 긴 여행들이 이어졌다. 결혼 전에 점쟁이는 이 남자 역마가 있고, 여기 저기 날아다닌다 했었다. 근데 남 얘기 할 것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역마살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부부의 역마를 사주가 공인해준다니 뭐, 둘 다 역마가 있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미국 모뉴먼트밸리
미국 투싼

코로나 이후 여행은 완전히 멈추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던 역마 가족은 완전한 히키코모리로 변신했다. 길던 짧던 여행은 알려준다. "집이 최고"라는 네 글자의 진리를. 몇달동안 집을 비워서 집이 아깝다 했는데, 이제 집과 몸이 하나가 되어 종이와 풀처럼 딱 붙어 있었다. 나는 휴직, 남편은 코로나로 비자발적 휴직을 했다.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었지만, 인터넷만 되면 세상 답답할 일이 없었다. 인터넷으로는 몸도 편하게 세계여행이 가능하다. 서울의 5G 인터넷망은 세계 왠만한 나라를 가더라도 답답해서 인터넷을 차라리 포기할 정도로 혁신적이며 광적으로 빠르다. 인터넷 속도 뿐인가, 관공서를 비롯하여 지하철까지도 약속한 시간을 정확히 준수하고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움직인다. 서울에 살다가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체계없음과 느긋함에 답답함을 느끼지 못할 성자는 아마, 드물 것이다. 서울에선 그냥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 백신도 약도 없던 시절, 아이도 유치원에 안가다보니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부부가 같이 아이가 크는 소리를 듣고, 하루 삼시세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지내니 참 신박했다. 세계가 닮고 싶어한다는 한국 유치원 교육이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였는데, 교육 선진국에 살고 있음이 실감되었다. 2월부터 3월 교육 공백을 메우려고 선생님들은 학습 꾸러미를 만들어서 집으로 보내주었고 알찬 원격 수업이 이뤄졌다. 쿠팡맨은 히키코모리 생활에 구세주였다. 최대한 늦게 결제해야 최대한 경제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 믿었기에, 밤 11시 45분부터 쿠팡을 기웃거리고, 11시 59분에 주문 접수를 했다. 놀라운 저력의 쿠팡맨은 다음날 아침 7시 전에 우주의 속도로 배달해주었다. 쿠팡에 적응이 될 때쯤 전지현이 보라색 트럭으로 보라색 택배 상자를 받는 티비 광고를 보았다. 컬리시장은 힙한 음식들의 천국이었고, 쿠팡과 컬리의 새벽 배송이 가능한 서울이 지구상에서 가장 편리한 도시로 느껴졌다.

서울놀이한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상경하였으나, 코로나로 집 밖을 나갈 일이 거의 없었다. 서울살기 전 관광객으로 서울을 여행했을 때가 오히려 더 열심히, 더 많은 곳을 다녔다는 결론이 났다. 한번 마음 먹고 차를 탔다하면, 함흥차사로 길에서 차구경만 하다 지치고, 집에 오자마자 배고파했다. 외계인이 러시아워 때 서울을 방문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완벽한 입지인 서울은 드넓은 한강을 가운데 두고, 도시 전체가 아파트로 빼곡히 가득차있다. 같은 듯 다른 디자인의 아파트, 낡고 새로운 것의 총집합, 일사정연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 세계에서 손꼽힐 트렌디한 도시, 그렇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직장 출근이 없는 휴직기간, 정작 서울 베네핏을 제대로 누린 것은 뜻밖의 순간, '배달 좋아하는 민족'과 '저기요' 앱을 켜는 찰나였다. 전세계에서 가장 요리 잘 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는? 서울이다.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아프리카처럼 찌는 여름에도 세계 대표 음식을 30분 안에 만날 수 있다. 배꼽시계가 소리칠 때 배달앱을 누르면 1초 안에 수 백개의 식당들이 문을 열고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프랜차이즈 미식의 천국이라 조리의 청결함과 일정한 레시피는 기본이다. 새벽 2시에도 맥주와 영화의 꿀조합에도 허전함을 느낀다면 야식 전문 배달 식당들이 맛있는 타코야끼를 20분만에 가져다준다.


남편과 둘이서만 오붓하게 서울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부모님이 집으로 와서 아이를 봐주시던 날이 있었다. 우연찮게 폭우가 내렸고 식당은 9시 코로나 통금으로 죄다 문을 닫았다. 생쥐처럼 비에 젖어 배고픈 채로 집에 들어오던 그날도, 알고보면 우린 서울 여행 중이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때즘 나는 서울집에서 체크아웃하였다. 진짜 서울을 여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오니 서울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따금 코로나를 생각하면 집콕하던 서울쥐 세마리가 떠오를 것이다. 집에 있는동안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직장에서 벗어나 본연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나날들이었다. 코로나는 여행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의미의 여행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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