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공포증이 아닌 호캉스가 될 수 있는 이유란
어린이집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송이가 분수토를 연거푸 하고 있어요. 지금 오셔서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때마침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급해진다. 일단 집에 돌아와 보니 송이는 열도 없이 잘 놀고 잘 웃기에, 다 토해내고 괜찮은 것 같아 보여, 차도를 지켜보기로 했다.
콧물만 조금 나도 곧바로 병원에 달려가던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 때는 병원 활용법에도 나름 굳은살이 생겼다. 해외여행 때 첫째가 갑자기 먹기만 하면 토를 했던 적이 있었고, 열이 39도 넘어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으며, 생망고를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번졌던 적도 있었다. 입안에 수포가 생겨 입이 아파서 밥을 잘 못 먹겠다고 말했던 적도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긴 로드트립, 한밤 중에 아이가 아프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나라는 대도시에 일주일 7일, 24시간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병원, 응급실이 도처에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의료보험으로 인해 본인 부담률이 낮아서, 3인실의 경우 4천 원대에 입원도 할 수 있고, 진료비와 약값은 커피값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동네 카페보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소아과를 외국에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급할 때면 네이버 지식 고수들로부터 꿀팁을 서칭 하고, 두문불출 연락한 의사 친구에게 절실히 해법을 얻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끼리만 다니는 여행이기에 어린이집 보냈을 때보다 감염성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에 걸릴 일이 그리 많지 않았고, 온도차로 인해 생기는 계절성 감기와 비염은 지나서 보면 쉽게 해결이 될 문제였다. 웬만한 감기와 비염, 심지어 장염까지도 백과사전에 따른 치료법을 잘 찾아보면, ‘수일 내 자연치유 가능하니, 충분한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고, 휴식을 충분히 가지면 된다’는 문구를 찾을 수 있는데, 병원에는 치료 목적이라기보다 엄마 마음 안심을 위해 간 적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사촌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미국에서는 체인형 약국이 잘 되어 있고, 동네 마트에서도 상비약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앓는 간단한 감기 정도로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또 항생제 사용은 최후의 보루로, 자연적 치유력을 돕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가 입안이 아파서 따갑다고 하기에 입안을 보니, 구내염으로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집 등원을 중지하고 며칠간 약을 먹이며 지켜봤던 터라 아차 했었는데, 호주 약국에 들른 약사의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정도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며칠이면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약사의 말을 듣고, 나는 그래도 먹여볼 만한 약이 없는지 되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약을 먹여도 먹이지 않아도 어차피 자연스럽게 나을 것이라, 권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증상을 가지고 약국에 갔을 때 빈손으로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아빠는 태연한 상태에서 여러 ‘병’들을 지나 보내고 나니, 간단한 감기 정도에 초연할 수 있는 미덕을 갖게 되었다. 옛날 어릴 적 배가 아플 때, 할머니께서 “할매 손이 약손이다” 하시면서 배를 둥글게 문질러 주시던 적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할머니 손 온기에 스르륵 한숨 잠들고 나면 괜찮아졌던 적이 생각이 난다. 둘째의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나를 보시더니, 요즘 엄마스럽지 않고, 이렇게 옛날 아줌마들처럼 애를 쉽게 쉽게 키우는 엄마는 처음이다 하시면서 옛날에 애 키우던 시절 생각이 나신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더라도, 문화가 다르더라도 애 키우는 방법은 큰 차이가 없음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시 토하는 둘째 아이의 치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한국의 완벽한 의료 시스템에 걱정된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뉘일 수 있었다. 병원에 가니, 장염이라서 몇 가지 약을 처방해주시겠다고 했다. 아이가 어제오늘 먹는 대로 토하는 바람에, 밥을 빨리 잘 먹게 해주고 싶다며 내가 입원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그 병원은 동네 아이들이 아프면 쉽게 입원할 수 있는, 입원 전문 병원이었다. 링거로 포도당 수액을 맞는 아이들로 즐비하고, 입원실을 확보하려고 엄마들이 주말이면 아침 8시부터 줄을 서는 것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입원은 어찌 보면 엄마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아이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입원을 원한다는 나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흔쾌히 안내를 해주셨고, 나는 남아있는 유일한 병실인 3인실에 배정되었다. 3인실에는 같은 장염 증상이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고사리 손에 링거를 맞힐 때 마음이 아팠으나 몇 시간 후면 팔팔해질 아이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아이가 수액을 맞고 회복이 되기 시작하자 불편함이 나를 휘어 감기 시작했다. 한평 남짓의 입원실은 커튼으로 서로 간의 경계가 그어져 있었고,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링거를 매단 폴대가 우장창 넘어지기 일쑤였다. 밤이 되면서 어려움은 더해갔다. 건너편 아이는 밤새도록 목이 쉬어라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며 울었고, 우리를 배려하느라 그 엄마는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병실 밖을 나갔다. 아이는 방에 오자마자 서럽게 울었고, 나는 이틀 연속 잠들지 못한 채 귀신처럼 병동을 걸어 다녔다. 우리 입원실 옆방은 수족구 방, 그 맞은편 방은 모두 코로나 방이었다. 좁은 입원실을 나가면, 수족구와 코로나에 옮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쉽게 다인실 밖을 나가지도 못했다. 보호자식사를 먹으니, 나도 함께 입원한 느낌이었고, 가져온 옷에는 눅눅한 기운에 쿰쿰한 걸레 냄새가 배어들었고, 가뜩이나 좁은 공간의 공기질은, 뉴욕 지하철을 방불케 했다.
나는 결국 꼬박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퇴원을 결정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상태가 완전히 나아질 때까지 입원하는 게 좋고, 장염으로 입원한 아이들은 빨라도 3일, 대개 5일 정도는 병원에 쭉 입원하다가 간다고 했다. 아이는 잘 먹지 못할 뿐, 링거 기운인지 잘 웃고, 잘 놀고 있어서 일단 퇴원하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가 천국인 듯싶었다.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냉장고 속 식재료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주방 조리대, 반나절이면 모든 것을 배달해주겠다는 쿠땡, 마켓컬땡, 이마땡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배송 시스템, 그마저 귀찮으면 지상 존재하는 모든 음식들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메뉴, 한국인만의 스피디한 배달 서비스로 단숨에 대령하겠다는 배달의 민땡까지! 집이 최고라는 것은 심지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는 외계인도 느끼는 진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문득 원효대사님의 해골물 일화처럼 불현듯 일상의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창문 없는 단칸방에 갇혀 있음이 이리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니, 그렇다면 여행지의 호텔방도 단칸방에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큰 감정 차이가 있을까.
오랜 여행 끝에 나는 언제나 깨달았다. “집이 최고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항상 알게 된다. “여행은 불편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필요한 것으로 내 동선에 맞게 가득 채운 것이 내 집인데, 그곳을 떠나는 즉시 불편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설렘으로 집을 떠나지 않는가. 사실은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호캉스도 사실 단칸방 하나에 지나지 않음에도 말이다. 하룻밤에 50만 원을 족히 지불해도 돈이 아깝지 않다며, 물질문명의 행복함을 1분 1초로 깨알같이 채우던 호캉스도 결국에는 작은 방 하나에 4인 가족을 기꺼이 욱여넣겠다던 선택의 결실이었다.
하루 전 집을 나설 때 나는 아이가 기적처럼 회복되길 바라며, 기대에 찬 마음으로 짐을 쌌다. 병원 짐을 싸는 마음이나, 여행 짐을 싸는 마음이나, 그 면면은 다를지 몰라도 큰 지향점은 결국엔 같은 곳을 향한다. 현실보다 나은 상태의 접점 말이다.
0.3평 남짓의 공간, 그곳에서 15시간을 15시간의 체공 시간을 가진 인천-뉴욕행 이코노미 비행과 비교해본다면 어떨까. 병실을 나설 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인천-뉴욕 이코노미 비행을 왕복 2번 한 것 이상으로 피곤함을 느꼈다. 집보다 나은 새로운 경험을 상상하고 집 밖을 나왔다. 병실에서 아이는 점차 회복되어가고 있었고, 그 즉시 나는 집을 꿈꿨다. 그 병실은 이코노미 좌석보다 2배는 족히 넓었음에도, 4배 더 힘들었던 이유는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호캉스도 결국은 단칸방에 지나지 않음을, 온갖 불편함이 도사리는 여행에 그럼에도 우리를 떠나게 만드는 원천은 새로움에 대한 반복된 갈망임을, 병원에서의 하루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집이라는 베이스캠프에서 나는 지금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여행은 3주 뒤 미국 어딘가이다.
Photo by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