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로 치자면 나는 미국 샌디에이고쯤 될 것이다. 그곳엔 1년에 300일은 따뜻하고 해가 비춘다. 하지만 긍정과 행복의 기운을 머금는, 햇님에게도 어김없이 불어닥치는 토네이도 앞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마음에 집채만한 파도가 일렁이는 날, 그런 날이 있다. "어쩜 나에게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은 일을 겪는 날 말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마음이 심난해져서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는 그런 날. 영혼을 위한 레시피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이 여행 지도를 건넨다.
마음이 갈기갈기 흩어진 날엔 제주로, 혼자 여행을 떠나보자.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 생각나는 특효술은 제'주'다. 서울에서 한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다. 여권도, 무슨 거창한 마음도 필요치 않다. 신분증, 카드 달랑 들고 공항으로 떠난다. 근심의 절반은 육지에 툭 떼어 던져놓자.
저 멀리 비행기 창 너머로 일년 내내 따뜻한 친구로 나를 반기는 제주도가 보인다. 한 눈에 섬 전체가 보여서, 뭘 해도 좋고 아무 것도 안 해도 그냥 좋은 섬이다. 너무 많은걸 하면 다음에 올 핑계가 없어지니까 천천히 하나씩 걸어보기에 소박한 이 섬이 제격이다. 돌아갈 비행기는 예약하지 않은 채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떠나보자.
제주여행 계획을 찾아보면 2박 3일이 주를 이룬다.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면 제주에서 일주일을, 그래도 된다면 한달을 보내보자. 단 하루도 충분하지만, 한달도 한달음에 달려나갈만큼 제주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다.
숲에서 한숨을 내쉬고, 바다에 고민을 던져본다. 혼자 여행하기에 이토록 좋은 안전하고 깨끗한 섬, 제주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름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어본다. 길 가다 동네 책방을 우연히 만나면 그 오아시스스러움에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도 같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더라도 제주에서라면 의미심장해진다.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영화에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현지인들만 안다는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동네 고양이 따라 흔한 길가를 따라 걷는다.
인터넷에서 리뷰를 찾지 않아도 좋다. 관광지인 제주에서 많은 경우 리뷰는 마케팅의 산물이기도 하니까, 나자신의 동물적 직감을 믿어보자. 숙소 근처에서 걷다가 내가 발견한 맛집에 토닥토닥 칭찬도 해준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 친구도 여권도 없이 꾸밈없이 찾을 수 있는 제주가 우리에겐 있다. "너 이런 친구 있어?, 난 있다!"하면서 자랑스럽게 꺼내보일 수 있는 그런 존재.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그냥 찾아가도 안아줄 것 같은 존재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는 낭만적인 행선지이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