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제주 1달, 어디서 잘까?
싸고 좋은 것은 없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숙소 선택법
여행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설렘을 품고 뭘 준비해야 할까 하나하나 계획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여행의 첫걸음이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이 여행의 본론보다 더 행복하다. 물론 하루 전날 급하게 짐을 싸느라 온 집을 헤집을 때는 "그냥 집이 제일 좋은데 굳이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생기지만 말이다.
제주는 참 많이 가봤다. 국내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제주이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식상함을 내포하는 곳도 제주여행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한달살이'는 익숙함 속의 새로움 그 자체이다. 한 달 동안 머물러야 하기에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 중 하나도 '어디에서 머물까?'였다.
꿈꾸는 제주 여행 풍경을 눈을 감고 상상해보았다. 나지막이 쌓인 돌담 너머로 보이는 파란 지붕의 제주 전통집, 파도 소리를 따라 슬리퍼를 신고 걸어 나가면 코 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 백사장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발자국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우리 부부가 서있다. 아이를 재워놓고 제주살이에 관한 영상을 남편과 함께 보면서 어떤 곳이 좋을지 이야기하는 것도 여행의 첫걸음을 내디딘 우리에게 다가온 설렘이었다.
꿈에 그리던 제주살이 숙소는 분명 누군가의 마음속에나 존재한다. 제주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며 바다 가까이 위치한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상주의자인 나와는 달리 현실주의자인 남편은 오래된 제주 가옥에서 나오는 지네, 바퀴벌레, 모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감성 숙소'로 검색해보니 더욱 현실에 가까워졌다. 화려한 호텔이 아닌 소박한 바닷가 제주집을 선택했다고 결코 가격까지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쾌적하고 깨끗한 제주 전통의 독채 가옥을 예약하려면 1박에 최소 20만 원은 예상해야 했다. 제주에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닌 살아보는 주민으로서 숙소에 '플렉스'하는 것은 왠지 관광객보다 더 관광객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바닷가 독채 제주 가옥이라는 옵션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숙박 검색 사이트를 찾다 보니 독특한 콘셉트의 숙소보다 오히려 호텔이 더 저렴했고 가성비가 좋았다. 4성급 호텔이 1박에 5만 원대에서 시작했기에, 일단 섣불리 한 달 머물 곳을 예약하는 것보다 며칠 머무르면서 장기간 숙박할 곳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오래 머물 숙소를 미리 방문해보고 결정하는 것은 실제로 제주에 장기 숙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방법이었다. 제주에 도착해 며칠 머물면서 겪어보니,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1. 언제든 요리할 수 있는 주방: 아이는 생각보다 새로운 음식에 익숙지 않다. 또 장기 숙박의 경우 매일 외식을 하게 되면 예산도 초과할뿐더러 건강에도 좋지 않다. 따라서 싱크대, 인덕션, 냉장고, 기본 조리 도구가 있는 숙소가 가족 단위 숙박객들에게 편리하다. 전자레인지와 밥솥, 냉동실까지 있는 냉장고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Tip) 주방이 있는 숙소에는 기본적인 식기와 조리도구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숙소 측에서 고객이 퇴실 후 모든 비품을 깨끗하게 씻어 정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냄비, 프라이팬은 코팅이 벗겨져 있거나 사용 흔적이 있는 경우가 많고, 식기와 수저류도 잔여물이 남아있는 경우도 꽤 있다. 따라서 만일 여유 공간이 된다면 작은 코펠과 인원수에 맞게 식판을 챙겨가는 것이 편리하다.
2. 각자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공간: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각자의 생활공간은 필요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조용히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아이는 바닥에서 장난감을 펼치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부부에게는 오늘을 마무리하며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또 여행이 길어질수록 손에 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책과 노트북을 펼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무공간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잠에 들었을 때 깨어있는 사람이 편안하게 식사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장기 숙박으로 갈수록 절실해진다. 결국 여행은 따로 또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인 이상의 가족이라면 별도의 방 뿐 아니라 테이블과 소파가 있는 거실이 있는 곳이 편리하다. 또 욕실이 2개 있다면 외출 준비와 마무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빨래가 가능한 공간: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여행지인 제주이기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옷감에 생활 먼지나 오염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세탁기가 절실해진다. 또 아이들은 많이 뛰고 넘어지면서 자라기에 어른보다 옷을 더 자주 세탁해야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자체 코인 세탁기를 갖춘 곳은 그나마 낫지만, 그마저도 없는 경우에는 근처에 있는 셀프 세탁방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적한 곳에 숙소가 있는 경우 시간과 비용적인 면에서 낭비가 크다. 결국 온 가족이 가는 대신 부부 중 한 명이 희생을 해서 무거운 빨래 가방을 들고 세탁과 건조를 하는 데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반면 오피스텔처럼 생활공간 안에 세탁기가 갖추어진 경우 언제든 빨랫감이 생기면 쉽고 간편하게 빨래를 할 수 있어 더없이 편리하다. 여기에 건조기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의 특성상 외부에 옷감을 널어놓거나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할 수도 없기에 통풍이 되지 않는 실내에 빨래를 너는 경우 건조대로는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4. 이동 루트를 고려한 숙소의 위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그림 같은 경치를 감상하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기에 어른들에겐 휴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풍경을 즐기기에 어린아이들은 장거리로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역일 수 있다. 제주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끝에서 끝으로 이동할 때는 아주 크게 느껴지는 섬이다. 따라서 1달 살기를 하는 동안 한 군데에서만 머물게 되면 숙소에서 떨어진 곳을 여행할 때는 이동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무리가 된다. 따라서 숙소 예약 전에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대강의 여행 루트를 짜고 이동하기에 편리한 곳에 위치한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 만약 숙소 한 군데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면 체크인과 체크아웃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장기 숙박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숙소 주변 동네를 느리게 탐방할 수 있는 장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엄연히 제주 숙소는 집이 아니기에 같은 곳에서 한 달을 머물면 생각지도 못한 불편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양한 콘셉트를 느껴볼 수 있으며 희망 여행지로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숙소를 최소 2군데 이상 정하는 것도 숙소 선택 시 고려할 점이 되겠다.
이렇게 아이와의 장기여행에서 있으면 좋은 4가지를 고려해볼 때 호텔보다는 리조트나 펜션, 또는 오피스텔이 제주 가족 여행에서 무난해 보인다. 사실 위와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호텔은 스위트룸 이상이 되어야 하므로 가격 면에서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호텔은 가족형 리조트가 채워주지 못하는 쾌적한 침구, 청소 및 룸서비스, 각종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적당히 취사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은 숙소를 구할 때 여실히 와 닿는 말이다. 하루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하는 곳이 숙소이다. 잠자리가 편안해야 다음날 일상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지만, 가족마다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다. 가족이 정한 예산 안에서 구성원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현명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