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닝뽀유 Oct 25. 2022

선생님 진짜 왜 전화하셨어요?

칭찬만을 위해 전화했을 때 학부모님의 반응

코로나가 서서히 걷히고 진짜 일상이 다가오고 있다. 몇 년간 멈추었던 학부모공개수업이 감사하게도 다시 열렸다. 코로나 초기부터 임신을 하고 육아휴직을 줄곧 해와서 학교라는 곳이 참 오랜만이었다. 교사로 일하러 갔던 학교와 학부모로서 방문하는 학교는 많이 달랐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을 보러 가는 것인데도 막상 학부모가 되니 거창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몇일 전부터 고민했고, 학교가 보이자 두근두근 설렜다. 처음 만난 같은 반 엄마는 공개수업을 마치고 나니 큰 짐을 덜었다고 했다. 학부모에게 학교는 어려운 곳이다. 


그간 교사로서 공개수업을 많이 했다. 학교의 작은 무대부터 교육부 주최의 큰 무대까지 다양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이제 학부모로서 수업공개에 참석하다니 이건 마치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느낌이다. 공개수업의 중심은 언제나 학생들이다. 학부모는 교사의 수업을 평가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서 방문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오늘 참관한 수업은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 찾아오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마음 교류가 있어 더욱 따뜻한 수업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위트가 있으면서도 아이들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배려해주시고 존중해주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는 주제로 아이들 각자 스스로의 생각을 문장으로 쓰고 발표로 공유했다. 아장아장 걷던 순간, 유치원에 들어가던 순간을 너머 이제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각을 나눌 정도로 성장했다니 참 기특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부모님들은 교사의 예고 없는 전화를 불쑥 받으면 무척이나 당황해하셨다. 무심결에 받으시다가도 담임교사라고 하면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의 예의와 격식을 차려 받아주셔서 늘 감사했다. 일정을 미리 정하는 상담이 아니라, 갑작스레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선생님, 무슨 일 있나요?" 하시며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보면 선생님과의 만남이라는 것도 점차 그라데이션처럼 옅어지는 것 같다. 선생님과 아이를 중심에 두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다름아닌 어린이집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아이의 반 선생님을 만나고, 수업시간 모습을 실시간으로 활동 사진으로 접한다. 하지만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선생님과의 만남은 뭔가 부담스럽고 큰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러다보니 학교선생님과의 전화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중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교과수업이 중심이 되다보니, 담임교사보다 교과담임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담임으로서가 아니라 영어교과시간에만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영어수업이 보다 특별하게 다가오기를 바랬다. 같은 칭찬이라도 금새 파도처럼 사라지고 마는 한 마디가 아니라, 마음에 오래 머무는 여운으로 자리잡았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걸었다. 담임도 아닌, 영어교과선생님으로서 학부모님에게 말이다. 영어수업 태도가 눈에 띄게 좋아진 아이, 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지만 나의 수업을 통해 영어실력이 크게 향상된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전화했다. 담임선생님도 아닌데 수업에서만 만나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자세히 바라봐줘서 감동이라며 뜻밖의 전화를 받은 학부모님들은 당황 섞인 웃음을 보이셨다. 그러고나면 아이들의 태도 또한 사뭇 진지해진다. 


퇴근 후에는 직장의 생각 스위치를 끄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좋다고 배웠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수업을 마쳐도 아이들이 남기고 간 여운은 꽤 오래 남아있다. 휴직한 나는 학생들의 교권 침해 사례와 교사의 처우 문제를 종종 기사로 접한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학교에서 나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순수한 눈망울의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선생님은 영웅이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훈훈한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감싸안았다. 겨울이 다가오는 교실은 햇살과 온기로 가득차있었다.


오직 칭찬만을 위해 학부모님께 전화했을 때, 학부모님은 대개 진짜 의도를 묻거나 당황한다. 문제를 고치는 교육이 아니라 쉼이 있는 교육, 다양성을 포용하는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교사가 수업으로서의 본질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칭찬만이 용건인 전화가 한결 익숙해지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사계절, 당신은 어디쯤을 여행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