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2학기, 학교에서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오늘 학기 중간 성적표를 배부하니, 확인 후에 부모 사인을 해서 다음날까지 돌려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 자랑스럽게 내밀지 않기에, 긴가민가하면서 통지표 봉투를 열었다.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망한 표정은 짓지 않겠다. 미리 표정 관리를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해야지 생각을 했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지.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는단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게 중요하지. 넌 어떤 생각이 드니?...
성적표를 나눠주는 이유는
첫째. 어떤 배움과 성장과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 아이의 노력을 칭찬해주어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것,
둘째. 부족한 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지 파악을 해서 보충학습을 통해 더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이 주요 목적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적표라는 딱딱한 말 대신, 배움성장기록표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성적표/통지표'라는 단어는 왠지 A부터 F까지와 같은 차갑고, 정량적인 수치가 나와있을 것 같고, '배움성장기록표'라는 단어는 정성적인 기록이 따뜻하게 서술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의 배움성장기록표에는 국어.수학.바른생활/슬기로운생활/즐거운생활 영역에서 모두 '매우우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스스로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지, 재밌거나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등의 대화를 해야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이렇게 외쳤다. "빨리 빨리 아빠한테 보여줘!"
학교 수업 후에 피아노/바이올린 수업도 하고, 치아도 발치하고, 예방주사도 맞고 오느라 아이는 피곤에 쩔어있었다. 부리나케 씻은 다음, 내일 있을 받아쓰기 공부도 다 마치지 못한 채 자석처럼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반 학기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러자 아이가 문득 말했다.
노력요함이야.
나는 말했다.
응?
엄마는 '노력요함'이라고!
할 말을 잃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잘하는게 있어?
그러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매우우수 하나 있어.
그게 뭔데? 물어보자, '책읽어주기'라고 말한다.
문득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나는 오늘 깨달았다.
평가 받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도 아이로부터 평가 받는다. 종이 형태의 통지표는 아니더라도, 말과 생각으로 아이는 매일 엄마에게 통지표를 준다. 내가 하루 종일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이렇게 애를 썼는데 너가 나에게 이렇게 박한 평가를 내리다니! 하고 괴씸해할 수 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좋은 성적표를 받는 것은,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는 것보다 어찌보면 아주 쉽다. 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란다. 믿음과 사랑이 듬뿍 주어진 날에는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사랑해. 고마워. 엄마 덕분에 나 행복해."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 컨트롤 영역 밖의 일들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포근히 안아주고, 모든 걸 덮을만큼 사랑해주는 일이다.
참 쉽지만 잘 되지 않는 것, 오늘 아이에게 나의 통지표를 건네 받고 깨달았다.
나는 얼마만큼 아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는가. 얼마나 공부했는가를 위주로 체크하는 엄마가 아니었는가.
나의 매우우수영역, 책읽어주기 - 책읽어주느라 고생했다. 애미야.
나의 노력요함 - 아이 이야기 들어주기, 마음 읽어주기.
책 읽어주는 엄마도 좋지만, 마음 읽어주는 엄마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그럼 오늘의 엄마의 배움성장기록표 반성.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