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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닝뽀유 Dec 17. 2022

아들과 엄마의 공통분모 찾기

참새방앗간에서 에너지 충전하기

문구사를 좋아한다. 초등, 중등, 고등 한결같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바로 동네 문구사.

중학교 때도 시험이 끝나면 대구 시내 핫트랙스로 친구들과 달려가서 문구 플렉스를 했고 고등학교 때도 책내음 나는 학교 앞 서점에 있을 때면 입시에 대한 불안감은 순간이나마 자취를 감췄다.

그래. 나는 문구 덕후였다. 많이 사는 것보다 고민해서 모은 몇개의 아이템들을 좋아했다.

필통 색깔로 하늘색과 분홍색 중 무엇을 사야할지 30분을 고민하던 중학교 시절 어느날의 기억들이 선명하다.

분홍은 소녀 감성이니 당연히 좋아하는데, 하늘은 뭔가 예외가 필요할 것 같아 사야될 것 같다. 문구사 바닥에 쪼그려앉아 색깔을 30분 동안 고민하는 경험이 이어지면 차라리 다음에는 분홍이나 하늘의 선택지가 없이 두개 중 하나만 차라리 있길 바래본다. 그러면 선택의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으니까.


8살 아들은 날 닮았다. 필기구를 좋아한다. 써보기보다는 고민하고 필통에 가지런히 정리된 그 모습을 좋아한다. 사이즈가 딱 맞는 함에 들어있는 종이류, 색종일류, 물감, 붓들, 다양한 스티커와 색종이가 진열된 공간도 참새방앗간이다.


집에 데려온 문구들, 그러다가 몇일이 지나면 샀던 사실을 잊을 정도로 산 문구들을 이리 저리 흩어놓고는 다시 문구사 방문을 기약한다.

집 앞 문구사는 별천지다. 이상와서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문구류, 선물류, 거기에 화방류까지 지하 단층에 다 전시되어 있는 문구 사랑방은 우리집에서 길만 건너면 닿을 거리에 있다. 이 문구사를 처음 발견한 날 아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며 설렜다. 한참을 아껴두다 이곳을 첫 방문한 날, 아들의 눈에 호기심의 별들이 솓구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들은 일주일에 한번 적립한 공부 포인트를 모아서 문구사에 가는 날을 손꼽아기다린다. 둘째없이 첫째와 단둘이 좋아하는 문구들 속에 파묻혀 데이트 하는 시간 첫째의 표정에 환희가 감돈다.


아들은 통에 가지런히 담긴 필기구를 내복에 끼워두고는 싱긋이 웃는다. 가장 진한 8B연필로 좋아하는 입체도형과 미로를 그려본다.

줄지어 예쁘게 단장한 문구들을 바라보며 스윽 미소 짓는다. 딸이 없는 아쉬움을 가끔씩 파도처럼 쓸어가주는 섬세한 맛의 오늘 우리집 아들이 참 좋다.


난 아직도 문구사에서 사소한 고민하기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문구쇼핑을 할 때는 따라다니며 빨리 고르라고 재촉을 한다.

문구사 만원 쿠폰이면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해하는 아들의 간단 명료함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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