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안내하되 냉정하게 묻다
전쟁을 그린 영화들을 생각해보았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을 누비는 병사들, 고된 병사들의 얼굴, 전쟁을 일으킨 악독한 지도자, 그동안 접했던 영화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일어나선 안되었을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나치를 그린 영화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조조 래빗의 시선은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시선으로 주제를 이야기한다.
11살 꼬마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과 나치는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는데, 11살 꼬마의 시선이 담긴 귀엽고 발랄함은 밝음이 있을 때 어둠이 더 어두 워보이는 대비 효과처럼 마음을 더 먹먹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나치즘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밝은 풍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이 감독의 큰 능력이자 재주로 느껴진다.
조조가 바라보는 나치와 전쟁, 당시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꼬마의 미성숙한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들은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상 최악의 전범이자 나쁜 사람이지만, 배 나온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의 히틀러는 우스꽝스러움은 친숙하게 다가오고 최악의 전범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이런 모습에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히틀러를 너무 코믹스럽게 표현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11살 꼬마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영역은 보는 이에게 넘겨진다. 꼬마의 미성숙한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들에 미소 짓게 되지만, 그 미소에는 분명 씁쓸함이 함께 온다. 조조의 눈에 비친 상황들은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을 보는 이들은 알고 있으며, 어른으로서 조조의 시선 뒤에 진짜 세상이 아름답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온다.
스칼렛 요한슨은 조조의 어머니 "로지"역을 정말 "로지"처럼 그려낸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결혼 이야기로 여우주연상에, 조조 래빗으로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그녀가 둘 중 하나라도 상을 받아가기 바랐었다.)
조조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전달하는 옳고 바른 어머니이자, 아들만을 위해서였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자신의 신념을 용기 있게 해내는 한 사람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 모습이 비장하거나 우울하지 않아서 보기에 더 좋았다. 그런 모습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를 떠올리게도 한다.
우울하고 슬픈 시대 속에서도 그다지 다운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특유의 유머러스한 말들로 아들을 씩씩한 모습으로 견인하려는 센스가 넘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광장에서 검푸르게 변해가던 그녀의 발등이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 여운을 남겼다.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는 이 영화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본인이다.
히틀러의 심볼인 2:8(1:9인가) 가르마, 수염을 소화한 감독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히틀러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감독은 조조 래빗의 히틀러가 너무 코믹스럽지 않냐는 이야기에 폴리네시아계 유대인 혼혈인인 본인이 히틀러 역을 맡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조조와 요키, 두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두 아이의 손에 들린 칼, 대포, 총, 수류탄을 보고서 흠칫 놀랐다. 11살 아이의 손에 총이 들려지는 게 말이 되나? 웃을만한 상황인가? 절대 아니다. 영화의 밝음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녹아있다가, 어느 순간 놀라 다시 보게 되는 장면들. 이런 충격이 총소리가 난무하는 전쟁보다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조조 래빗은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따뜻함과 밝음을 통해, 일어나선 안될 일들에 대한 메시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따뜻하게 안내하되, 냉정하게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