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 두 교황
이제까지 보았던 영화 중 N차 관람을 가장 많이 했던 영화를 꼽으라 하면, 이 영화일 것입니다. 리뷰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는데 이 영화는 정말 리뷰를 잘 써보고 싶어서 미루고 미루었기도 했습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았고 온전히 이해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써보자 하고 생각했었죠. 이 영화는 제 기준에선 정말 완벽한 영화인데 연기, 음악, 연출, 각본 모두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이후, 바티칸은 새로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차기 교황으로 선출합니다. 저명한 신학자이자 전통과 보수를 고수하는 그의 선출과 함께 가톨릭은 변화보다는 기존 교리에 충실한, 안 되는 건 안 되는 보수적인 종교적 행보를 보입니다. 그리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당시,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6세와 함께 유력한 후보이자 변화를 이끌 인물로 지지를 받고 있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프란치스코는 추기경에서 은퇴하고자 직접 바티칸으로 의중을 담은 사임 편지를 보내죠. 그런 그의 편지에 응답하듯, 베네딕토 16세는 그를 바티칸으로 부르지만 실은 그 부름은 프란치스코의 편지에 대한 응답은 아니었습니다. 추기경의 사임이 아닌 교황직에서 내려오고자 하는 베네딕토 16세가 차기 교황으로 추기경이었던 프란치스코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그의 사임을 반대하고 그에게 차기 교황의 자리를 의논하려 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교황의 여름 별장에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예배당에서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격렬하게 부딪히기도, 서로에게 설득이 되기도 하며 수많은 토론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실제 그랬던 것처럼, 변화의 상징이었던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266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토르의 아버지 오딘. 아마도 지금의 세대는 그를 토르의 아버지로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만, 배우로 활동한 년 수만큼이나 대단한 연기를 펼치는 안소니 홉킨스 배우는 정말로 대단한 배우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거의 100%의 싱크로율을 보이는 조나단 프라이스 배우에게 화제성에서 살짝 밀리는 것 같지만 그가 연기하는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그의 눈빛과 말투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특히 한 장면을 꼽자면 하느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기도했지만, 침묵뿐이었다는 대사가 있는 장면이 있는데요. 신을 믿는 인간과 성직자의 모습, 신에 대한 성직자의 신념, 좌절 등이 그 짧은 찰나에 모두 담겨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저에게는 몇 번이나 돌려보았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쯤 되니 정말 이 배우가 신부님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연기 었습니다. 두 교황 이전에 엑소시즘을 다룬 “더 라이트”라는 영화에서도 그는 악과 싸우는 구마 사제로 신부님을 연기한 적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과 놀라울 만한 싱크로율을 보여줍니다. 외모적인 면에서 거의 흡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의 모습도 매우 흡사합니다. 이 배우의 연기 또한 두 말할 필요가 없네요. 또한 극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청년시절을 연기한 배우 또한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청년시절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됩니다. 제작진이 현실감을 위해 캐스팅에 엄청난 공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감독이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연기 잘하는 사람 둘을 데려다 놓고 어떤 느낌으로 연출될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추기경과 교황이 저런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에 맞춰 종교도 함께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낙태, 동성애, 이혼 등 죄악으로 여겨졌던 이슈들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교리에 기반한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그런 교회를 이끄는 수장이었습니다. 그러한 보수적인 분위기는 사제들의 성추문 등 범죄에 대해서도 침묵을 택하기도 했고, 영화는 그즈음에 베네딕토 16세의 신념이 바뀌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덧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네딕토 교황의 생각에는 그런 교회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추기경을 불러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이야기할 때, 베네딕토 16세는 프란치스코가 현실과 “타협”했다고 하죠. 그러나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타협은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나 변화는 다르죠. 교회가 변화한다는 것은 교회에 득이 될 것을 염두하지 않으며 설상 그간 고수해온 것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것이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올지라도,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과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자신은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2000년이나 된 교회가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빛났던 장면을 꼽자면 교황의 여름 별장 정원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다 라고 하지만,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신은 변하며 우리 쪽으로 이동한다고 하죠. 신이 항상 이동한다면 우리가 어디서 신을 찾을 수 있냐는 베네딕토 16세의 반문에, 프란치스코는 “on the journey?”라고 대답합니다. 교회의 방향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보석 같은 대화였다고 생각됩니다. 삶의 방식,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종교에 대한 고찰이 느껴졌고, 선한 방향이라면 진리도 변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방구석 1열>에서도 얼마 전 진보와 보수를 다루며 두 교황을 소개했는데요. 변영주 감독님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극복하는 방법으로 좋은 예와 나쁜 예가 있는데 나쁜 예로는 자신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데려와 내 말이 맞는지를 확인하면 된다고요.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데려와 그 사람의 말을 듣기로 결정한 것이 베네딕토 16세가 택한 좋은 예라는 거죠. 이 방법은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겨내야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네딕토 16세에게 있어서 교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자신보다는 프란치스코가 적임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그것이요. 누구나 알지만, 선뜻 행동하기 어려운 태도를 선택한 베네딕토 16세.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가장 비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임을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제작진의 추론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전통과 비전통, 보수와 진보, 타협과 변화 등 여러 가지 키워드를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각본이 빛을 발하 영화라고 느껴집니다. 거기에 플러스로 연기 백단 배우들이 그 완성도를 정상까지 밀어 올렸죠. 지적이며 우아하고 근사한 토론의 장이 영화 내내 펼쳐집니다. 몇 장면들은 재미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았는데, 저는 콧노래로 아바의 댄싱퀸을 흥얼거리는 프란치스코의 모습과 매우 희한하다는 듯 바라보는 베네딕토의 모습을 담은 장면, 고해성사를 마친 두 사람의 식전 기도와 함께 피자를 먹는 장면,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 막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중을 향한 인사 장면, 두 교황이 함께 모여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는 장면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두 사람의 연기가 더해져 주제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되 훨씬 쉽게 설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낸 장면들이라고 할까요. 보신 분들은 어떤 장면이 좋으셨나요? 댓글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꼭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