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무비 1cm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트앤노이 Oct 19. 2020

나의 우주와 딸이라는 우주를 동시에 품어가며

프록시마 프로젝트

프록시마 프로젝트(Proxima, 2019)


<프록시마 프로젝트>를 보니 머릿속을 스치는 몇몇 영화들이 있습니다. 여성 우주비행사를 다룬 점에서는 <그래비티>, 가족이란 소재를 담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퍼스트 맨>, 남자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우주에 발을 내딛는 <히든 피겨스>까지. <프록시마 프로젝트>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보았던 영화들에서 이미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었던 그 감정을 저변에 깔아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 답습은 아닙니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별만큼이나 빛나는 꿈을 가진 ‘사라’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깊이 있게 그려냈는데요,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기에 더 마음을 울리는 듯합니다.

유럽 우주국의 프록시마 프로젝트 대원으로 선발되어 곧 우주로 떠나게 될 여성 우주비행사 사라.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동경하는 우주, 그 별의 이름을 담은 딸 스텔라. 애착이 강한 두 모녀는 사라의 훈련 일정에 따라 곧 헤어져야 하는데, 별거 중인 남편에게 딸 스텔라를 맡기지만 아빠에게 딸을 맡기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습니다.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남성 우주비행사 마이크 또한 묘한 감정을 드러내며 여성인 ‘사라’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편견들에 보란 듯이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훈련에 참여하는 사라이지만, 그녀도 그 훈련이 버겁고 힘겹기도 합니다. 그녀를 둘러싼 관계와 갈등 속에서, 사라는 한 걸음 한 걸음 우주를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여성의 참여에 예상되는 뻔한 반응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프랑스인 여성 우주비행사를 환영하는 이유가 “프랑스 여성이 요리를 잘해서”라고 말하거나, 사라에겐 인생 그 자체인 우주비행사를 두고 “우주 관광객”이라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 동료. 성차별적인 발언에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임에도 언제나 익숙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사라가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묘한 차별과 인식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을 따라갑니다. 그녀가 어려움에 부딪히는 장면들은 크게 극적인 효과로 표현되지도, 극복하는 과정도 통쾌하거나 극적이게 연출하진 않았습니다. 영화적이거나 극적인 요소가 최대한 제한되어 숨죽여 지켜보게 만듭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잔잔한 느낌을 가진 전반적인 영화 분위기를 따라가되, 영화의 주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연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연출을 뒷받침해 주는 건 아무래도 “에바 그린”의 눈빛, 연기 일 것입니다. 



나의 별, 스텔라

영화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라의 딸, 스텔라죠. 사라와 스텔라는 마치 자석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큰 의미입니다. 서로 간의 연대와 유대감, 애착이 강한 애틋한 모녀 사이죠. 사라에겐 스텔라가 존재의 의미일 것이고, 스텔라 역시 엄마인 사라가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런 엄마가 우주비행훈련으로 몇 달간이나 자신과 떨어져 지낸 후, 1년이나 지구 밖으로 나가는 예사롭지 않은 출장을 딸이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엄마가 지구 반대편도 아니고 아예 지구 밖으로 출장을 간다니(제 입장이었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아찔하죠. 아빠가 있지만 어쩐 일인지 아빠는 엄마만큼의 안정감이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딸에게 엄마는 어떻게 자신의 일을 설명해 줘야 하고, 그 감정을 달래주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합니다.

훈련 중 생기는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꾸 덧이 나는 것은 이런 상황에 있는 사라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딸에 대한 걱정, 커리어에 대한 욕구, 일을 하면서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워킹맘의 현실, 훈련의 고단함 등 현재 자신을 사로잡은 고민들이 해결되지 않고 낫지 않는 상처처럼 깊어져만 가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하여, 모녀의 감정은 안정궤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스텔라는 엄마 없이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들에 대해 일종의 괜찮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사라가 했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비로소 얻게 되죠. 영화 후반부 어느 시점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빠에 반해, 희망과 확신으로 차오르던 스텔라의 표정에서 그 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사라의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예견된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바로 딸의 이름을 별이라는 뜻을 내포한 “스텔라”라고 지은 것부터요. 사라에게 우주비행사라는 꿈은 과거부터 그녀 인생의 전부였겠으나, 딸을 만나고 나서는 인생의 전부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 사라에게 꿈과 딸 모두 그녀 인생의 전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딸보다 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그것 자체가 딸 자체가 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미래 언젠가 반드시 딸에게 큰 자양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주비행사라는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일을 하면서 딸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해낸 엄마를 떠올리면 스텔라는 분명 강인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에바 그린은 처음 보는지라!

에바 그린은 아마 스파르타를 외치던 영화 <300 : 제국의 부활>에서의 모습으로 강렬히 기억될 것 같습니다. 또는 <007 카지노 로얄>의 본드걸도 있죠.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왠지 모를 퇴폐미가 뿜어져 나오는 고혹적인 마스크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기존 그녀가 연기해오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토론토 플랫폼상, 제45회 세자르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 노미네이트 등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죠. 에바 그린의 팜므파탈스러운 저 마스크가 <프록시마 프로젝트>에서는 “예쁜 엄마”가 아닌 “워킹맘”으로만 느껴졌던 것은, 배역에 온전히 빠져들어 자신의 것처럼 소화해 낸 그녀의 연기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저 역시도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아빠가 그 자리를 채워주었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고 괜히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머리를 묶어주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엄마가 사회에 참여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단장하고 집을 나설 때면 아빠의 회사 가는 복장과 다르게 불안감을 안겨주었죠. 그렇기에 스텔라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 훗날 사라의 마음을 느끼게 될 저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일터로 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시간으로 다가오게 될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였습니다. 잔잔한 분위기와 에바 그린의 연기가 분명 멋진 조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 에바 그린의 연기 변신이 궁금하시다면! 그 깊은 눈과 눈빛을 잊지 못하실 거예요.

- 개인적으로 <퍼스트 맨>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딸과 주 인물의 관계를 그려냈다는 공통점은 물론, 영화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우주비행사로 활약한 여성들의 사진들이 등장합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자녀들과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우주비행사에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있어 놀랐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동과 재미를 줄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 컷

이전 04화 조조 래빗(Jojo Rabbit), 밝아서 더 어둡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