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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Jul 21. 2020

"역 앞에 햄버거 집 접는대"

이제 우리 동네에 햄버거 하는 집이 없다는 게 서운했던 엄마의 목소리

"오늘은 티렉스 버거다"


가족 단톡 방에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에 한참을 웃었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엄마는 버*킹, 맥**드, 롯**아 3사의 햄버거 중 버*킹을 제일 좋아하시는데, 얼마 전 이사 온 이 동네에는 아쉽게도 버*킹이 없어 늘 아쉬워하셨다. 결국 대안으로 역 근처의 롯**아에서 종종 퇴근길에 햄버거를 드시고 오시거나, 사 가지고 오신단다. 엄마는 이렇게 점심시간에, 퇴근시간에 종종 햄버거를 드시는 것 같다. 


진정 부지런히 사드실 마음이었다고 하신다

어느 날 늦은 시간, 단톡 방에서 엄마는 역 앞 햄버거 집의 근황을 이야기하셨다. 톡 내용을 보고 전화를 걸어보니 내용인즉슨, 역 앞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버거를  7월 1일부로 접는다고 쓰여있어서 사실을 확인하고자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햄버거를 더는 안 하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직원들은 그저 "저희도 잘 모르겠는데, 그때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들으셨다고 한다. 집 근처에 햄버거 집은 롯**아 여기 하나인데, 이제 못 먹겠네 하는 아쉬운 마음에 햄버거를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목소리에 서운함이 잔뜩 묻어있어, 바로 근처 햄버거 가게를 서치하여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맘**치 를 알려드렸다. 

그리고 이틀 뒤 SNS를 보다가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7월 1일부로 버거 접습니다"란 그 회사의 마케팅 포스터를 보신 것이 틀림없다. 엄마에게 이 포스터를 본 게 맞냐고 여쭈니 맞다고 하신다. ㅎㅎ 서글픈 눈빛으로 질문을 했을 엄마가 생각나서 정말 많이 웃었는데, 엄마는 머쓱해하시면서도 "So what?"이다. 빵이 접혀서 나오는 그 친구는 얼마나 맛있으려나 꼭 먹어봐야겠다고 하시는 게 귀여웠다. 


엄마가 혼자 햄버거 드시는 게 싫어서


나는 햄버거를 "맛있어서 먹고 싶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입맛이라서, 엄마가 햄버거를 종종 사드신다는 톡이나 카드 사용 알림이 오면 두 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엄마가 귀여우면서도 내심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엄마 연배의 분들은 혼자서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잘 드시지 않을 텐데, 엄마는 정말 햄버거를 좋아하는가 보다, 엄마 귀엽네."였고,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60이 넘은 여성이 햄버거 집에 앉아서 혼자 점심에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좀 그래 보이지 않을까"이다. 


두 번째 생각은 선입견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잘 수그러들지 않는 생각이다. 다른 점심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고 대충 빠르게 때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햄버거인데, 소비 대상이 장년의 여성이 된다 하면 뭔가 짠하고 언발란스한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저 연배에 왜 햄버거를 드시지? 돈이 없어서? 자식들이 안 챙겨서?" 남들이 이런 유의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짠하게 바라볼까 봐 그게 못내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번이나 햄버거를 드시는 이유를 확인했다. (점심값을 아끼시려고 그러시는 건지, 영양가 있는 밥을 차리시는 게 귀찮으신 건지 등등.) 그제야 엄마는 정말 햄버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햄버거를 드시면서 햄버거 가게의 와이파이로 넷플릭스 미드를 보는 게 큰 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가 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햄버거보다는 영양가 있는 점심을 드셨으면 좋겠어서 이후에도 몇 번 괜한 잔소리를 한적도 많다. 그러나 접는 버거 일 이후로는 엄마의 입맛을 선입견 없이 존중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자주 드시는 건 건강상 잔소리를 또 할 생각이다... ㅠㅠ)


너도 예쁘게 입고 혼자 선지 해장국 먹으러 가잖아


당사자가 좋다면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로 크게 중요치 않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다. 또 한 번 내가 가진 선입견과 생각의 오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다. 각자의 취향과 의사가 존중받는 시대인데 나이 드신 엄마가 햄버거집에서 혼자 햄버거도 드실 수 있고,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혼자서 영화를 보실 수도 있고, 아주 이지적이고 세련미가 넘치는 도시의 여성이 혼자 삼겹살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혼밥이라는 단어가 이상한 선입견을 차단하기 위해 짜잔 하고 등장했고  이제는 비일비재하게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시대에 역행한 발상을 가진 점을 반성 반성 또 반성했다. (본인도 예쁜 원피스 입고 선지 해장국집에 혼자 밥 먹으러 간 적도 있다. 맛집이라 먹고 싶어 갔다. ‘남들이 젊은 여자 혼자서 선지 해장국 먹으면 어떻게 쳐다볼지, 처량해 보이진 않을지, 그땐 왜 걱정 안 했는데?’라고 반문도 해본다. ) 


접는 버거 맛있는지 아직 안 먹어봤는데, 엄마는 드셔 보셨으려나 여쭤봐야겠다. 안 드셔 보셨다면, 오늘 저녁은 접는 버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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