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기다려도 되잖아?'
커피 한잔 마시려고 포트에 물을 끓이다가 스친 생각이다.
물이 끓는걸 굳이 서서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털썩.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앉으니까 이렇게 편하다.
편함과 동시에 문득 '내가 늘 이렇게 서 있었나?' 생각이 들었는데, 앉을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 있었던 적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동료와 일 이야기를 할 때 책상 옆에 의자가 있었는데도 서 있었고, 오늘처럼 포트에 물을 끓이거나 요리하려고 냄비에 물을 끓일 때에도 늘 서 있는 것 같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려도 되는데 굳이 서서 기다렸고, 운동 겸 산책을 나갔을 때에도 벤치에 한번 앉질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서 있는 것이 마음의 여유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된다.
- 무언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
- 그걸 지켜보고 있어야 안정되는 마음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너~무 앞서 나가 있는 성급한 마음
-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에도 나에게 충분히 쉴틈을 주지 않는 마음
생각해보면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니다. 나에게 해결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되도록 빨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밀려오는 조바심과 완료에 대한 강박관념은 눈앞에서 그 일을 꼭 지켜보게 하고, 눈이 그곳으로 향하니 당연히 몸도 그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자석에 끌리듯이 해결해야 하는 그 일에 마음이 끌려가니 몸도 자연스레 끌려간다. 일을 넘어서, 사소한 생활 전반에서 그런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음이 지나쳐 발현되는 현상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신경을 쏟아부어 피로도가 많이 쌓인다. 피로하다, 피로해. 결국엔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에 그 과업을 해낸 나를 칭찬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나를 칭찬하는 것도 피곤하다.) 그래서 산책 후 벤치에 한 번 앉아 나를 쉬게 해주지 않는 사소한 생활의 모습부터 충분한 텀 없이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태도가 습관화되어버렸다.
이런 태도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지향의 태도가 생겼던 것 같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쉼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피곤한 태도!
생각해보면 이러한 태도 때문에 가장 후회되었던 적은 여행지에서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카페에 한번 앉질 않고 쉼 없이 돌아다닌 것이다.
많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행지의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출연자의 모습을 보여줄 때 아쉬움이 밀려왔다. 카페에 앉아서 사람도 구경하고, 여행지의 풍경도 다시 한번 구경하고, 그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해 사색하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 여행지에서도 여유롭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서 있지 말고 앉아야 할 것 같다. 조바심과 완료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
꼭 그 모든 걸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일은 늘 자연스럽게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