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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Jul 16. 2020

커피 물 끓는걸 굳이 왜 지켜보고 있어?

'앉아서 기다려도 되잖아?'

커피 한잔 마시려고 포트에 물을 끓이다가 스친 생각이다. 

물이 끓는걸 굳이 서서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털썩.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앉으니까 이렇게 편하다. 

편함과 동시에 문득 '내가 늘 이렇게 서 있었나?' 생각이 들었는데, 앉을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 있었던 적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동료와 일 이야기를 할 때 책상 옆에 의자가 있었는데도 서 있었고, 오늘처럼 포트에 물을 끓이거나 요리하려고 냄비에 물을 끓일 때에도 늘 서 있는 것 같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려도 되는데 굳이 서서 기다렸고, 운동 겸 산책을 나갔을 때에도 벤치에 한번 앉질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서 있는 것이 마음의 여유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된다. 


- 무언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

- 그걸 지켜보고 있어야 안정되는 마음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너~무 앞서 나가 있는 성급한 마음

-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에도 나에게 충분히 쉴틈을 주지 않는 마음


생각해보면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니다. 나에게 해결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되도록 빨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밀려오는 조바심과 완료에 대한 강박관념은 눈앞에서 그 일을 꼭 지켜보게 하고, 눈이 그곳으로 향하니 당연히 몸도 그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자석에 끌리듯이 해결해야 하는 그 일에 마음이 끌려가니 몸도 자연스레 끌려간다. 일을 넘어서, 사소한 생활 전반에서 그런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라면 물 끓일 때 굳이 그걸 왜 보고 있어? 커피 주문하고 왜 굳이 서있어?


앉아서 조금 기다려도 되는데, 어차피 물은 자연스레 끓게 되어있는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음이 지나쳐 발현되는 현상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신경을 쏟아부어 피로도가 많이 쌓인다. 피로하다, 피로해. 결국엔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에 그 과업을 해낸 나를 칭찬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나를 칭찬하는 것도 피곤하다.) 그래서 산책 후 벤치에 한 번 앉아 나를 쉬게 해주지 않는 사소한 생활의 모습부터 충분한 텀 없이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태도가 습관화되어버렸다.


이런 태도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지향의 태도가 생겼던 것 같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쉼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피곤한 태도! 


생각해보면 이러한 태도 때문에 가장 후회되었던 적은 여행지에서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카페에 한번 앉질 않고 쉼 없이 돌아다닌 것이다. 

많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행지의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출연자의 모습을 보여줄 때 아쉬움이 밀려왔다. 카페에 앉아서 사람도 구경하고, 여행지의 풍경도 다시 한번 구경하고, 그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해 사색하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 여행지에서도 여유롭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서 있지 말고 앉아야 할 것 같다. 조바심과 완료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

꼭 그 모든 걸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일은 늘 자연스럽게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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