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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Mar 15. 2020

서울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끝이었을까?

*혹시나 제목을 보고, 서울을 비하하거나 사람들을 나쁘게 쓴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 미리 조심스레 적습니다. 절대 비하의 의미나 나쁜 뜻은 없으며, 오히려 저의 편견을 뒤돌아보는 반성적인 글임을 말씀드립니다. :)


 대학을 졸업하면 대게는 많은 일자리가 기다리는 우리나라의 심장, 서울로 향한다. 사람도 많고 기회도 많으며 지방에는 없는 다양한 직무들까지 보유한 서울은 갓 대학을 나온 졸업생들에게는 기회와 매력의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웬만하면 내가 살던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눈뜨고도 코를 베일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도시도 그럭저럭 일자리를 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새로운 직무를 경험하고 싶어 서울로 온 지 2년 반이 되었다. 내가 서울로 올 당시 나이는 서른 한 살, 일찍이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로 향했던 친구들이 집과 엄마가 그립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립고, 팍팍한 도시 생활에 조금 지쳐 다시 내가 살던 도시로 돌아오던 그 나이에, 나는 거꾸로 서울로 향했다. 첫 출근을 하면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 지하철 역 내 그 수많은 직장인들을 보고 놀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사는 도시의 지하철 역은 출근길에도 그 역내에 몇몇이 서있는지 정확히 셀 수 있었지만(대략 10명에서 20명 사이쯤?), 서울은 그런 사람 수 세기는 아예 불가했다. 쏟아지는 사람들에 좀 어지럽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고,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제 각각의 가치관과 성격을 가진 이 서울에서, 나는 3번이나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들, 잃어버린 것을 깨달은 순간에 ‘아… 하느님 제가 찾을 수 있게만 해주시면, 차라리 몇 번 숙취로 고생하는 고통을 대신 겪을게요…..’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잃어버린 물건들은 모두 나에게 돌아왔다.


 첫 번째는 친구 카메라였는데, 촬영이 있어 촬영지로 출근하다가 버스 안에서 놓고 내렸다. 그런데 다행히 친구가 그 안에 본인의 명함을 넣어두었고, 그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버스 안에서 그 가방은 얌전히 있다가 버스기사님이 종점에서 발견한 후 연락을 주셔서 찾을 수 있었다. 아무도 그 카메라 가방을 탐내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나의 노트북이었는데, 동서울터미널 앞의 강변역 화장실에 두고 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노트북을 잃어버린 것을, 노트북을 화장실에 두고 나온 이틀 뒤에야 알게 되었다. 집에서 노트북을 쓸 일이 없어서 아예 깜빡한 것이다. 아, 멍청이 ㅠ) 노트북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은 이틀이 지난 그 순간, 포기상태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 내 사무실로 전화를 했는데, 웬걸! 내 노트북이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 가져다주셨단다. 터미널 앞의 역 화장실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착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했어서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내 노트북이 거기에 있었다. 그저 기쁨에 겨워 가져다주신 분의 인적정보가 있을지 미처 묻지도 못했는데, 너무 후회된다. 감사한 마음만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는 지갑이었다. 이건 바로 얼마 전 일이었는데, 1월 2일 아침 정초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문 앞 벤치에 잠깐 앉아있다가 탔는데, 그 벤치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이었다. 진짜 절망스럽고 스스로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나에 대한 회의감이 막 몰려왔는데, 두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출근을 하시는 어르신 한 분이 지갑을 주워 연락을 주셨다. 헐레벌떡 어르신의 직장으로 찾아갔는데, 어르신은 심지어 직장에서 기다리시지 않고 직장 앞 역까지 나를 마중 나오셔서 지갑을 돌려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가지고 있던 현금을 드리려고 하는데, 이러려고 주운 게 아니라며 극구 사양을 하셨다. 어르신이 계속 거부하시길래, 점심이라도 그럼 사 드시라고 하고, 지폐 한 장이라도 제발 받으시라고 쥐어 드리고 돌아왔다. 정초부터 한 시간 반을 지각했다. 

돌아온 지갑과 노트북, ㅜ ㅜ 볼 때마다 "에구 진상.."하면서 스스로 진상 취급하게 된다. ㅎㅎ;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예전 동화를 보면 기대에 부푼 시골 쥐가 서울에 갔다가,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닌 것을 깨닫고 따뜻하고 편안한 자신의 고향인 시골로 돌아온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한국에서는 시골 쥐와 서울 쥐로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 들었던 이 이야기 때문인지, 서울로 오기 전 나에게 서울은 편리하고 화려하며 세련된 도시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이 없을 것 같고, 차가울 것 같고, 깍쟁이 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인만큼, 착한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그리고 내가 서울로 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조차 “우리 00이, 서울에서 코 베어가면 어쩌지? 깍쟁이들이 힘들게 하면 어쩌지? 착한 사람들 못 만나면 어쩌지?”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안녕 인사를 했었다. 이런 인식들이 합쳐져 처음 카메라를 잃어버렸을 때, 나는 허탈함과 절망 속에서 ‘아.. 서울에서 물건 잃어버리면 끝인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값나가는 카메라와 노트북, 현금과 신용카드가 들은 지갑, 중고로 팔아도 값어치가 없지 않은 물건들이 무려 3번이나 잃어버린 족족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격은 신비한 이 일들은 내가 너무 편견을 가진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해주는 사건들이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라서 착한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는 편견, 정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 남의 일에는 크게 관심 없을 것이라는 편견, 말 그대로 편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따뜻하며 소위 말하는 “착한”사람들이었다.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며, 내가 새로운 구성원으로 잘 합류할 수 있도록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깍쟁이”는 없었다. 정말이지 “깍쟁이”라는 말은 오랜 시간 쌓여온 인식과 편견이 다소 귀여운 단어로 산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정이 많았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공유해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운 좋게 3번이나 물건들을 되찾았던 것처럼, 그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만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2년 반 동안이나 운이 지속되었다면 그건 그냥 운이 아니라 “일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좋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 늘 많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은 나에게 좋은 곳이 되었다. (월세나 물가, 복잡함, 지방보다 좀 비싼 점심값 등 이런 건 평가에서 제외하더라도 ㅎㅎ ;) 일련의 사건들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운은 계속되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일상과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잡함과 미세먼지로 인한 회색도시의 느낌이 강하게 들 때도 있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외로운 회색 도시일 때도 많아 언젠가는 내가 나고 자란 도시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은 나에게 괜찮은, 도시이다. 

누군가 서울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너무 절망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돌아올 거예요!


(* 카메라와 노트북을 찾아 주셨던 분들, 지갑을 주워 주셨던 어르신!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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