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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Aug 25. 2020

엄마 아빠, 전 1주일에 만원만 쓰겠습니다

다 큰 자식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시기는 언제일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3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대학 입학, 취업, 결혼! 각자의 시기는 다르겠지만 보통은 이런 이유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대략 서른~서른다섯이면 이 과정이 완료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나도 이 경우에 속하기는 하지만, 대학교도 집에서 다녔고 첫 직장도 집에서 다녔기에 서른 넘어 이직하며 타 지역으로 반강제적 독립을 하게 된 좀 느린 경우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일찍이 타지 생활을 하면서 극복했을 ‘엄마 보고 싶다’의 감정과 외로움의 감정을 뒤늦게 느끼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독립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퇴사 후에도 독립생활을 이어 나갔다. 사생활이 보장되고,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편안함과 생활소음 1도 없는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또 자연스레 부모님에게서 독립할 나이도 되었기도 했으니까. 나 역시 그러려고 했다. 삶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들이 많은 그 도시의 재미, 혼자 사는 것의 편안함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쉼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기에 경제적으로 매달의 집세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감정적으로는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집을 떠나는 시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자연스레 지출할 일이 적어졌다. 크게는 집세와 각종 생활비가 가장 많이 줄었고 그 외 자잘한 것들도 모두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탁 세제, 김치, 전기세 등등, 혼자 살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김치를 사 먹는 일이었다. ㅋㅋ) 그러다 보니 우스개 소리로 “난 1주일에 만원만 쓸 거야!”하고 까불거릴 때가 많다. 물론 생활비를 따로 드려야 하지만, 혼자 살 때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다. 1주일에 만원만 쓴다는 이야기는 ‘제가 다 크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와 당당하게 굴며 머쓱함을 덮어보려는 심산과 조크가 섞여 있다. 




사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내 나이에 한 번도 집을 떠난 적 없이 부모님과 사는 것과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님이랑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자식이지만, 이상하게 "신세 진다"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왜 그런 감정이 생기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독립하기 전에는 아주 편안하게 지냈던 집인데도, 다시 돌아와서 살아보니 ‘염치’란 단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모님은 오롯이 부모의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시는데도, 내 입장에서는 항상 그 단어가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다.


부모님은 다 큰 딸이지만 홀로 타지 생활하는 내가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에 내가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으면서, 당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편히 쉬고 에너지도 듬뿍 충전하길 바라신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한 번쯤 본 장면처럼 다친 동물을 정성껏 돌보아 주면, 그 개체가 나중에 힘차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런 엔딩에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느낌은 주로 부모님이 나의 근황을 묻는 지인분들에게 “혼자 타지에서 회사생활 열심히 하다가 번아웃인가 뭔가 힘들어해서~ 내가 데리고 왔어!”라는 대답에서 많이 느껴진다. 

남들은 열심히 직장생활 중인데, 쉬는 내가 머쓱할까 봐.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단단하고 강인한 너의 부모다’라는 것을 견고히 하고 ‘너는 나에게 아직 더 기대어 쉬어도 된다’ 하는 당신만의 의지와 강건함, 사랑을 더 크게 내비치시려는 듯하다. 부모님은 어느샌가 내가 예전에 느꼈던 큰 산이 아닌 작은 언덕배기처럼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실 때 다시 한번 큰 산처럼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꼭대기 끝을 보려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산.


여러모로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절이 지나간다. 1주일에 만원만 쓴다며 여전히 머쓱함과 염치와 죄송함을 덮고 있다. 그러면 1주일에 만원만 써도 괜찮으니 편하게 있으라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럴 때는 코끝이 종종 시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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