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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Aug 24. 2020

수영을 배우든지, 남자 친구를 만나든지!

잊히지 않는 구명조끼의 굴욕

작년 10월, 친구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베트남 여행에서 내가 단 한 가지 원한 것은 “인피니티 풀”이 있는 숙소였다. 당시 회사일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짧은 여행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었고, 보노보노처럼 물 위에 누워 둥둥 떠다니며 휴식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소원대로 인피니티 풀이 있는 숙소를 예약하고, 기분도 낼 겸 비키니도 2개나 사고, 1일 1수영을 꿈꾸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수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물에 들어가서 힘을 빼고 누우면 자연스레 뜨게 되고, 약간의 발구르기와 손동작만 있으면 떠있을 수 있다는 얘기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푼 마음을 안고 도착한 풀은 상대적으로 얕은 곳(1.6m)과 깊은 곳(1.8m)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역시나, 나는 얕은 곳에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얼음이 되고 말았다. 몸에 힘을 빼고 보노보노처럼 누우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물이 무서운 나머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허우적거렸다. 순간의 무서운 감정이 찰나의 트라우마로 변한 순간! 신규 생성된 트라우마는 자연스레 내 몸에 구명조끼를 입혔다..


이렇게 아름다운 인피니티 풀이었건만

그 인피니티 풀에는 세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했다. 내 친구를 포함하여 아예 물에 들어가지 않고 선베드에 누운 사람들, 자유롭게 물개처럼 물에서 노는 사람들, 그리고 수영을 못하는 여자 친구가 물에 빠질 경우 구해줄 만한 믿음직스러운 남자 친구가 곁에 붙어있는 커플들. 구명조끼를 입은 나는 새로운 종류의 사람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머쓱한 감정을 뒤로하고 풀에서 나름의 수영을 도전해보았으나, 구명조끼의 불편함은 내가 당시 꿈꾸었던 “마음의 평안, 힐링”을 방해했다. 구명조끼는 조끼의 어깨 쪽이 약간 위쪽으로 들리면서, 내가 절대로 물에 편하게 있지 못하는 자세를 만들어냈다. 수영의 "수"도 구경하지 못한 채, 구명조끼 없이 풀을 누비는 하얀 피부색의 사람들 속에서(그들은 정말 인어같이 수영했고, 아름다웠다.) 조끼 외에 의지할 곳 없는 수영 무 경험자인 나는  그렇게 불편하게 둥둥 표류하고 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그녀 옆엔 그녀를 위해 대기하는 그가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기회가 생기면 꼭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의 말처럼 수영을 배우든지, 아니면 허우적댈 때 바로 건져줄 누군가를 만나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했는데, 수영을 배우는 편이 좀 더 멋있는 여성일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마리의 인어처럼 물을 누볐던 그 여인들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퇴사 후, 남들이 다 출근하는 그 시간에 수영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물에 대한 공포심은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선생님의 가르침 외에도 초보자를 위한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며 열의를 올렸다. (그리고 재밌기도 재미있다.) 그날의 허우적거림으로 물이 무섭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면 수영에 도전하지 못했을 텐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들을 도장깨기처럼 하나씩 해나가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면서 내가 다니는 수영장도 휴장에 들어갔다. 당분간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어 퇴사 생활의 재미가 반감된 느낌이지만, 이 틈에 다음 도장 깨기를 준비해보아야겠다. 뚜벅이 생활을 청산하고 차를 사야겠는데, 겁이 너무 난다. 차,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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