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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Aug 18. 2020

서른네 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숙제 없이 잘 먹고 잘 쉴 겁니다!

스물여섯 살,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고 휴가 이외에는 길게 쉬어본 적 없는 나는, 늘 “언젠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긴 휴식을 가져볼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남들은 이직을 하며 1~2주, 길게는 한 달 정도는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곤 한다는데, 휴식 없이 회사를 옮겼던 나는 늘 ‘휴식(긴~휴식)’에 집착했다. 그리고 지난 5월을 마지막으로 회사생활을 종료하며 긴 염원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번아웃이 겹치면서 더 간절하게 휴식을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6월,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의 긴 휴식인 서른네 살의 여름방학도 같이 시작되었다. (휴식을 원했던 만큼 “백수생활”이 아닌 “여름방학”으로 나름 타이틀도 붙였다 ㅎㅎ.)


주위에선 걱정을 하더라

언제쯤 다시 일 시작할 거야?” or "백세시대야!"

퇴사 후,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꼽자면 첫 번째는 단연 “언제쯤 다시 일 시작할 거야?”였는데, 그 말에는 늘 나를 걱정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코로나 이슈, 여자, 서른 중반의 나이, 이런 점들이 채용시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들이었다. 두 번째는 “그래! 백세시대인데 인생에서 이만큼의 휴식기간은 걱정할 일도 아니야.”였고 그 말에는 나를 향한 응원이 담겨있었는데, 내가 불안으로 이 휴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할까 봐 어깨를 두드려주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받으면서 내가 느낀 점이라면, 의외로 “응원”을 더 강하게 받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서른을 넘기면서 퇴사를 생각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응원보다는 걱정이 더 강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퇴사에 대한 사회 전반적 인식이 부정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트렌드와 환경들이 빠르게 변하면서 퇴사가 아주 못할 일처럼 여겨지는 문화는 많이 사라진 것 같고 개인의 행복이 중시되면서 퇴사를 장려하는 문화가 많이 생겨난 것 같다. “일”은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현재와 같은 트렌드가 아니라면 나도 퇴사를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내 걱정을 하더라 

'그렇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은 어쩌지...'

이런 주위의 반응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나는 나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이 휴식을 잘 즐기면 되는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누르는 일도 쉽지는 않다. 여기 브런치를 포함하여 퇴사 관련 다양한 에세이나 책, 인터뷰들을 접하면서 퇴사한 선배님들의 노하우를 통해 불안하지 않은 휴식을 보내려 노력 중이지만, 내 의지대로 잘 안 될 때 도 많다. 퇴사를 하면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서 몇 가지는 앞으로의 커리어와 관련된 것이 있고, 몇 가지는 커리어와 상관없는 내면의 수행이나 운동, 자잘한 취미활동 등 취미와 휴식에 관련된 활동도 있다. 그런데 커리어와 상관없는 일들을 할 때 그렇게 불안감이 고개를 쓱 내밀며 “네가 지금 이거 할 때야? 이거 할 시간에 니 일이랑 관련된 자격증을 하나 더 따! 아니면 빨리 회사를 다시 다녀!” 한다. 그러면 또 속절없이 마인드 컨트롤이 무너지면서 채용공고 사이트를 기웃거리게 된다. 


잘 쉬는 것, 다음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

그러나 흔히 말하듯 인생을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했을 때, 페이스의 조절 없이 빠른 속도로, 또는 같은 속도로 계속 뛰어가는 것은 중도에 낙오를 불러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긴 여정을 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불안감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어느 지점에서 내가 달려야 하고 쉬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달려야 할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리고, 쉬어야 할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쉬어야 다음번의 달리기와 쉼에 더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는 않지만 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내려놓고 온전히 쉼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To do list에 얽히지 않고,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숙제 없는 휴식을 지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동해의 하늘도, 내가 좋아하는 부암동의 하늘도, 이젠 너무 다 예쁘다. :)


하늘이 너무 예뻐 보인다

퇴사 전, 번 아웃에 접어들었을 땐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만든 예쁜 광경 조차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퇴사 후 휴식을 하게 되면 가장 느껴보고 싶었던 감정은 “하늘이 예뻐 보이는가!”였다. 그리고 지금은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 하늘이 너무 예뻐 보인다. 여유가 선물하는 이 감정을 좀 더 충실히 느껴보고 싶다. 불안해하지 않고 온전히 이 여름방학(여름방학이 겨울방학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만)을 숙제 없이 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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