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베데레 하궁에서 열린 에곤 실레전에 다녀오다
벨베데레 상궁을 다녀온 지 이틀 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클림트의 “KISS”가 있는 그 벨베데레 상궁의 맞은편 "하궁"으로 간다.
원래는 상궁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실레의 그림은 상궁의 맞은편인 하궁에서 별도의 전시회를 갖는다. 벨베데레 상궁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적으로 하궁은 조금 외톨이 신세라고 하는데, 실레의 전시회가 별도로 열렸으니 이전보다 많은 사람이 하궁에 찾아왔을 것 같다.
상궁에서 여유롭게 조금 걷고 나니 하궁이 보인다.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전시회다. 마음이 설레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포옹이라는 그림 외에도 여러 가지 그림들이 한참을 그 앞에 서성이게 한다.
그중, 독특한 그림이 발걸음을 계속 붙잡아 두었는데, 클림트의 키스가 환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면, 이들의 키스는 절망을 떠올리게 한다.
죽음과 여인(Death and the Woman), (1915)
둘은 영락없는 에곤 실레와 그의 연인 발리이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과 여인이다.
발리는 실레와 오랜 기간 동거한 여인으로, 그의 모델로도 많이 등장한다.
이 둘의 만남은 실레가 중산층 집안의 여인인 에디트와 결혼을 결심하기로 한 이후 깨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그림에 담았다고 한다.
여인의 생기 있는 색채와 달리, 남자(죽음)의 색채는 매우 음침한 것 같다. 어느 곳을 응시하는지 모르는 초점이 없는 눈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영혼 없는 눈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인을 안고 그녀의 머리에 키스하고 있지만 그에게 그녀를 위한 영혼이 없는 것 같다. 지난 세월 자신의 옆에 있었던 발리, 안쓰럽고 안타깝고 치명적이었던 사랑 발리.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해 버린 실레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인의 생기 있는 색채는, 실레를 향한 발리의 애정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기 없는, 죽어가는 고목나무 같은 남자를 꽉 끌어안았다. 그렇지만 결국 이 둘은 헤어지게 될 것이다. 서로의 관계는 죽음이 된다. 남자는 관계의 끝을 알리는 "죽음", 그 자체이다. 그리고 어쩌면 발리가 없는 삶은 실레에게도 죽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먼저 놓아버린 사이었을지라도.)
중산층 여인과의 안정적인 삶을 꿈꾸었던 에곤 실레, 실레와 이별 이후 종군 간호사로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발리 노이질. 자신의 작품에 수없이 등장한 뮤즈와 같은 그녀를 놓아버린 이유가 다른 여인이라 하니, 어쩐지 쓸쓸하다. 연인과의 사이에 우리가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으나, 발리가 그렇게 전쟁터에서 떠났다 하니, 그림은 훨씬 서글프고, 실레의 구차한 변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어, 발리. 나를 이해해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