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땠지?
여행지엔 포토스팟이 정말 많다.
지자체에서 마련해 놓은 포토스팟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관광지 그 자체만으로도 어쩌면 포토스팟이 아닐까 싶다. 멋진 배경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를 들고 싶어 지니까.
이런 포토스팟에서 인생사진 남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사진 찍는 걸(엄밀히 말하면 사진 찍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가끔 카톡 프사를 건지기 위해 사진을 찍곤 한다. 예쁜 풍경에 어정쩡한 포즈는 덤이고.
그런데 그런 사진들을 찍을 때마다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여행을 망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무슨 소리냐고?
충북 영동 월류봉이다. 그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달도 머물고 간다 해서 월류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뚝 솟은 바위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정자.
이름에 걸맞게 기가맥힌 포토스팟이 설치되어 있다. 커다란 달 모양과 그 뒤로 보이는 멋진 월류봉의 정자, 그리고 충북 영동이라 쓰여있는 감성 넘치는 글씨체까지.
달 위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답게 월류봉 앞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주차장엔 관광버스가 줄 지어 서 있었고 등산복을 입은, 아마도 월류봉 둘레길 트레킹을 떠나는 것으로 추측되는 어머님 아버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월류봉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꽤나 유명한 '인생사진 스팟'에는 줄을 선다고도 들었다.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오면 찍고 빠지는. 여긴 아직 그 정도의 스팟은 아니었던지 줄은 따로 없었다. 그냥 눈치싸움이랄까.
눈치껏 기다렸다. 인생사진 남긴다는 데 눈치 정도는 봐줘야지. 그리고 드디어 달 조형물이 텅 빈 틈을 타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누가 왔다. 그것도 엄청 빠르게 누구보다 강하게.
이해한다. 나의 내공이 부족해 눈치싸움에서 밀린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차분히 기다렸다. 어차피 질서란 없으니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아닌가 생각했다.
달 조형물 위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이 순간을 즐긴 여행객. 보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OO아! 이제 니 차례다, 얼른 앉아"
친구를... 부른다고? 저기요, 저 기다리고 있는 거 보셨잖아요?
원하는 만큼 찍었던지 조형물에서 내려와 친구를 불렀다. 그러니 그 친구가 쭐레쭐레 걸어와 달에 착석. 사진을 찍어주던 친구였으면 오케이, 인정. 그게 아니라 그냥 길 가던 친구를 불러왔다. 사진 찍으라고.
"자, 이번엔 둘이 같이!"
투샷... 도 찍으신다고요? (절레절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의 인생사진은 포기하기로 했다. 일정상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기분 좋게 시작한 여행인데,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까.
열을 씩씩 내며 돌아가던 길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도 이랬던 적이 있을까?"
분명 그분들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나를 보지 못하고 그랬을 터다. 떡하니 다 보고 있었다면 할 말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사람이 많은 여행지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될 듯싶었다. 나의 조그만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 인생사진 찍을 때 너무 고집부리진 말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