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행 Jun 16. 2023

여행계획 짤 때 가끔 난 눈물을 흘려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빨간 레드카펫을 걸으며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들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인생 한 번 사는 거, 저렇게 화려하게 살아보고 싶긴 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소시민 1인 밖에 안 되는 나는 이 세상에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특히 인생의 '노잼시기'에 빠져들었을 때면 그 생각들은 더 짙어졌다. 반복되는 평범한 삶에 지쳐 그 어떤 것도 재밌질 않았던 시기. 


얼마 전 엄마와 나는 다음에 갈 여행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수국이 아주 예쁘게 피어날 시기인지라 전국에 수국 맛집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거제도에 가면 바다와 수국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럼 1박으로 거제도를 갈까?" 


사람들의 소개 영상 속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거제도로 결정되는 듯했으나, 엄마가 말했다.


"가는 데만 4시간이 넘고, 쉬엄쉬엄 가면 5~6시간은 될 텐데. 내가 그렇게 오래 차를 탈 수 있을까?"


그렇게 거제도 여행은 무산됐다. 오랜 치료로 몸이 정상 컨디션은 아닌지라 오래 차를 타는 건 엄마에겐 무리였다. 아쉽지만 거제도는 안녕. 


이럴 때 문득 느끼곤 한다. 내가 그토록 지루해했던 평범한 날들이 어쩌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엄마가 아프고 나서 특히나 여행과 관련된 것들을 할 때 '평범'이 훅 치고 들어오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여행지를 결정하지 못할 때. 병원 스케줄에 맞추느라 여행 일정을 미리 결정하지 못할 때. 여행을 가서 아무거나 골라 먹지 못할 때. 여행을 하다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해야 할 때. 


그럴 때마다 울컥하기도 한다. '아 맞다. 엄마 아프지' 여행 계획 짤 때가 가장 설렌다고들 하는데 나는 살짝 서글퍼진다. 

매일 똑같은 하늘이지만, 반가워

요즘엔 평범함이 참 그립다. 노잼시기는 개뿔, 그냥 평범하게만 살았으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나이 36, 아직도 혼자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