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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플러스 Mar 19. 2021

퍼스트 클래스

  첫 해외여행이라 들뜬 마음으로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는데 ‘삑’ 소리가 크게 났다. 심드렁하게 출국 심사대를 지키고 있던 직원과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공항 경비대 두 명이 다가왔다.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넘나들었다.

‘삑’ 소리가 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공항 사무실로 가서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비행기는 떠나고, 나는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몇 해 전 개봉되었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주인공처럼 체포된다.

가족들과 연락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자꾸 상상되었다.


  직원이 여권에 적힌 영문명과 비행기 티켓에 있는 영문명이 달라서 소리가 난 것으로 파악하는 2분여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지루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직원은 걱정하지 말고 일단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해당 항공사에 문의하라고 했다.

티켓에는 내 이름의 마지막 자인 ‘덕’에 해당하는 알파벳이 ‘DEOK’가 아니라 ‘DECK’로 표시되어 있었다.

카톡으로 여권 사진을 보냈는데 항공사 직원이 알파벳 ‘O’를 ‘C’로 착각해 벌어진 일이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해당 항공사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티켓을 정상적인 이름으로 다시 발급받았다.

그동안 비행기가 이륙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항공사는 “항공사 측의 실수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비행기 탑승 수속을 할 때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 셋을 다른 통로로 안내했다.

탑승 수속을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옆 통로였다.

아마도 업그레이드 좌석 전용 통로인 듯했다.

통로는 비즈니스석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좌석도 업그레이드시켜준 건가?' 하는 기대감은 비즈니스석에 도착할 때까지였다.

우리는 예약석인 이코노미석으로 바로 안내되었다.


  태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 우리 일행은 살짝 긴장했다.

출국할 때야 말이 통하는 우리나라여서 영문 이름을 바꾸는 것이 별 문제없었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는 영어로 상황 설명을 하고 티켓을 다시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보디랭귀지를 섞어 상황 설명을 하고 티켓을 다시 발급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방콕 돈무앙으로 가는 타이 항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대기실을 가득 매웠던 중국인 관광객이 빠져나가자 우리 일행 셋만 남았다.

그때 항공사 관계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우리 셋의 옷에 빨갛고 둥근 스티커를 붙여 주었는데 거기에는 Fly-Thru(CIQ)라고 흰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출입국 때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세관, 출입국 관리, 검역의 세 가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스티커였다.


  직원은 우리 셋에게 따라오라는 사인을 주었고 우리는 직원을 따라갔다.

탑승권을 제시하고 탑승구로 가니 직원은 우리를 위해 리무진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리무진은 한참을 달려 항공기 가까이 갔다.

우리가 리무진 문을 열려 하자 운전기사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얼른 반대편으로 와서 리무진 문을 열어주었다.

영화에서나 봤던 리무진을 운전기사가 열어주고 비행기 트랙을 직접 오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 이름이 잘못 표기된 탓에 이런 호사를 누려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고, 어깨마저 으쓱해졌다.

트랙에 오르는 장면을 사진 찍어두고 싶었지만 앞서서 안내하는 승무원에게 미안해서 그냥 트랙에 올라 탑승을 했다.


  비행기에 오르니 승객은 우리 셋뿐이었다.

승무원에게 "우리 셋뿐이냐?" 했더니,  "그렇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럼, 아무 곳에나 앉아도 되냐?"라고 물었더니 "그러라" 했다.

  “내가 오늘 리무진 하고 비행기 전세 냈으니 편하게 가.”하고 장난을 치며 가까운 좌석에 넉넉하게 앉아 웃었다.

승무원들도 친절히 우리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우리 셋을 위해 기장을 비롯한 6-7명의 승무원이 대기를 하고 있다니 우리 때문에 항공사가 얼마나 손해를 보는 거야. 그까짓 이름 철자 하나 잘못한 죄로.” 하면서 항공사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공항 셔틀버스 두 대가 비행기를 향해 다가왔고 셔틀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더니 비행기 트랙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우린 깨달았다.

외국인 승객은 우리 셋뿐이라고 안내한 걸 짧은 영어 실력으로 우리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렸다는 걸.

나머지 승객들은 모두 태국 자국민이었다.


  우리는 예약된 자리를 찾아 앉았고, 약간의 비행 후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돈무앙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여직원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 셋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우리가 피켓에 쓰인 사람임을 밝히자 여직원은 피켓을 든 채로 우리에게 따라오라 했고, 우리는 VIP가 사용하는 로비를 통과하여 출국심사를 받았다.


  이름 덕분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퍼스트 클래스가 꽤나 인상적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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