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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플러스 Apr 09. 2021

커피여행을 떠나다


몇 년 전 큰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대상의 평생학습 과정으로 커피 클래스가 개설됐다.

커피의 역사부터 시작하는 이론 수업과 직접 드립을 배워보는 실전 수업이 병행됐다.

커피 강사 말로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커피 추출 방법을 머신 제외하고 다 가르쳤다고 했다.


커피 추출 방법은 생각 외로 많았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칼리타, 고노, 하리오 드립 외에도 융드립이나 사이폰 추출, 아프리카 원주민들처럼 분쇄한 커피를 그릇에 넣어 끓여먹는 법, 그리고 모카 포트로 에스프레소 내리는 방법, 커피의 눈물이라고 하는 더치까지 배웠다.


우유로 베리에이션을 하는 라테, 카푸치노,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아보카도까지 커피의 세계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만 먹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요즘은 베리에이션 하는 방법은 다 잊어버렸다.


스트리트 원두로 내리는 커피는 커피마다 맛이 달랐고, 같은 커피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 다 맛이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커피를 시음하느라 너무 많은 양의 커피를 마셔서 때로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즐겁게 커피를 배웠다.


나는 12주 과정을 연속해서 세 번이나 들었다.

커피 중에 가장 신기했던 건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였다.

안티구아 커피를 처음 먹던 날 커피가 매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커피를 먹고 입술 주변이 화끈거려 혼났다.

안티구아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화산재 지형에서 생산되는 안티구아 커피는 전년도의 화산 활동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다음 회기에도 두 번 더 안티구아를 드립 해 먹어 봤지만 처음에 맛봤던 스파이시한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주민센터에서 개설한 커피 강좌도 들었다.

그만큼 커피가 좋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커피 강사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함께 태국 도이창으로 커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바리스타를 할 것도 아닌데 커피 여행을 한다는 강사의 공고에 손을 번쩍 들었다.

왠지 커피나무를 한 번쯤은 봐야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외로 커피 여행을 신청한 사람은 나와 지인, 둘 뿐이었다.

그래도 커피를 보고 싶다는 열망은 식지 않아서 강사와 나, 그리고 지인 셋인 단출한 여행이 됐다.


우리는 태국에서 3박 4일 이리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잠깐이나마 현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첫날 묵은 여행자 숙소가 현지인의 삶의 터전과 가까웠던 덕분이다.

우리나라 70-80년대 시골 번화가 모습을 상상하면 어느 정도 가까울 것이다.

골목길에 몇 송이 달렸던 초록색의 바나나도 신기했다.


둘째 날은 현지인 택시 기사가 임시 가이드가 되어 목적지인 도이창 카페를 찾았다.

해발 700-800m에 커피나무가 지천이었다.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것 중에 붉게 잘 익은 커피 생과를 골라 씹었다.

커피 열매 중에 노랗게 익은 것도 있는데 내 입에는 노란색이 더 맛있었다.

커피 밭에서 커피 생과를 수확하는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자신의 상반신만 한 커피나무 가지를 뚝 잘라 풀밭으로 옮겨와 쭈그리고 앉아 커피를 수확하는 중이었다.

아저씨께 부탁해서 잠시나마 커피 수확 체험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몸짓으로 대화하는 동안 아저씨는 우리를 향해 순박한 웃음을 계속 보여 줬다.

카페 옆의 넓은 마당에서 껍질 벗긴 커피콩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멀리에는 창고로 보이는 건물도 있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커피콩은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다.


근처를 다 둘러보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주인은 조그만 유리잔에 보리차 빛깔의 물을 따라줬다.

처음 맛보는 향긋한 차였다.


"I love it! it's very delicious "

영어 짧은 내가 나도 모르게 외칠 만큼 맛있는 차였다.

그 차 이름이 뭔지 물었다.

말린 커피 꽃 차였다. 작년에 처음 만들었고 올해 상품으로 처음 출시한 거라 했다.

커피 잎차는 많지만 커피 꽃 차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만 원가량 하는데 태국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이다.

이미 커피 꽃 차에 마음이 뺏긴 나는 한 병 샀다.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 꽃 차를 마실 때마다 더 많이 사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도이창 카페에서 커피 생과를 먹을 때 커피콩을 버리지 않고 모았었다.

여행 내내 소중히 간직하고 입국할 때 걸리지 않게 잘 포장해서 집까지 무사히 가져왔다.

그러나 화분에 심은 스무 개가량의 커피콩은 끝내 싹을 틔우지 못했다.


커피나무가 보고 싶은 날은 신도시에 있는 카페에 간다.

3년 됐다는 커피나무는 아직 50cm 정도로 조그맣다.

언제가 그 나무에 커피 열매가 열리는 것까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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