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오셨구나. 그럼 전교생이 몇 명이나 돼요?”
섬에서 왔다는 내 말에 주일학교 수련회에 참석한 다른 교회 여선생이 물었다.
“글쎄요, 초등학교가 네 개이고 6학년까지 있으니까 한 학교당 칠팔백 명 될 테니까 적어도 이삼천 명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내 말에 여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섬이라면서요?”
“네. 섬, 맞아요. 영종도요.”
여선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영종도가 어디 있는 섬이에요?”
“혹 인천 국제공항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인천 국제공항이 있는 섬이 영종도예요.”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씀하셔야지, 깜짝 놀랐잖아요. 섬이라고 해서 정말 조그만 섬인 줄 알았어요.”
여선생은 크게 웃었다. 나도 따라 크게 웃었다. 인천대교가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거의 십여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에는 인천 국제공항은 알아도 영종도나, 배후도시로 공항신도시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다.
나는 공항신도시에 살게 되면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섬에 산다.”라고 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섬사람을 만나는 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섬’이라고 하면 굉장히 먼 곳, 가기 힘든 곳으로 무의식 중에 인식되는 게 대부분이니까. 나도 공항신도시에 살기 전에는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사 온 후 영종대교가 완공되고도 몇 년간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섬’이라는 이유로 학교 급식단가가 외부의 반값 정도밖에 안 됐다.
나는 이사 오기 전부터 영종도로 이전한 교회를 다니느라 2002년부터 영종도를 드나들었다. 아파트만 지어졌을 뿐 각종 편의시설이 없던 터라 입주민이 많지 않았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조차 몇 명 되지 않아 우리는 지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인사하곤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영종도의 각종 개발 호재들이 무산되고,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의 영향으로 아파트들이 –P 행진을 이어갔다. 신문, 방송에서는 연일 ‘유령도시, 영종도!’를 보도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도 딱히 이사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였다.
인천대교가 완공되기 전에는 영종도로 들어오려면 영종대교를 통하거나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구읍배터로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송도나 중구 쪽에 볼 일이 있으면 자가용으로 15-20분, 대중교통도 1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2시간 이상 시간이 걸렸다(대중교통 기준). 지금은 공항철도가 늦게까지 운행을 하지만 당시에는 김포공항역에서 운서역행 마지막 공항철도를 놓치면 영종도에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려면 근무가 끝난 후 부지런히 서울에 나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곧장 일어나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무사 귀가를 친구들에게 알려야 했다.
한 번은 운서역행 마지막 공항철도를 놓쳤다. 검암역까지는 왔으나 영종대교를 건널 방법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남편에게 연락해서 검암역까지 데리러 나와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 한 가지와 검암역 근처의 대중 사우나에서 밤을 보내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다. 남편은 매일 저녁마다 술을 먹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대중 사우나에서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다. 천우신조라 했던가. 남편은 그날만은 술을 먹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남편이 오기까지 인적이 끊긴 컴컴한 검암역에서 기다리는 순간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온갖 구박을 받은 후로 친구들을 만나면 늦어도 9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전철을 탔다. 나를 보고 친구들은 “네가 신데렐라냐? 시간 맞춰 들어가게.”라고 놀리곤 했다.
공항신도시로 이사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도서관이 가깝다는 거였다(영종도서관은 2009년 3월 개관, 우리는 6월 이사). 작지만 산뜻한 외관의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도서관 행사에 자주 참여하던 중 특강으로 마련된 동화구연 8차시 강의를 들었다. 귀한 강의를 들었으니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서관 측에서 자원봉사 제의를 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어떻게 하는지 몰랐는데 자연스럽게 봉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몇 년간 했다.
초대 도서관장님께 제의하여 주부 독서회(섬마을 문학동네)도 만들었다.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원이 많지 않지만 아직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흡하지만 회원들의 시, 수필, 소설 등으로 2년에 한 번 꼴로 동인지 형식의 책도 만들고 있다.
영종도는 볼거리가 많다. 을왕리나 왕산 해수욕장의 해안가에는 바다 조망의 예쁜 카페들이 많다. 신도시에는 1시간 코스의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신도시를 약간 벗어나면 카페거리와 영화관이 있다. 하늘도시에는 씨사이드파크를 비롯해 구읍배터 중심으로 호텔과 음식점,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주말이면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종도가 북적인다.
나는 지금 영종 하늘도시에 산다. 하늘도시에 많은 아파트와 상가들이 지어지고, 학원과 병원, 마트, 영화관까지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지금도 들어서는 중이다. 차량 정체도 가끔 생기고 주차할 곳이 없기도 할 만큼 번잡해졌다. 십 년 전에 비하면 영종도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아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싶다.
섬과 도시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바다와 산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영종도가 나는 좋다. 언제든 바다가 보고 싶을 때는 마음 내키는 대로 을왕리로 가기도 하고 씨사이드파크나 구읍배터로 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손에는 대개 커피 한 잔이 들려있다. 영종도에서 새로 사귄 지인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