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무도 골목길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달팽이’라 할 수 있다. 달팽이가 되어 느릿느릿 천천히 보아야 한다. 나 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평소처럼 분주히 걷기만 하면 그 아름다움을 미처 알아차리기 힘들다.
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무의바다누리길’의 중간에서 마을길로 들어서면 섬을 동서로 가르는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소무의도로 들어오는 인도교를 건너 포구를 통해 곧장 마을길로 접어들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무의바다누리길’의 자연을 한껏 감상하고 도시의 때를 좀 빼고 만나야 비로소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길로 접어들어 몇 걸음 걸으면 지금은 폐교된 아담한 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담장 너머까지 마음대로 웃자란 나무들이 삐죽하게 팔을 뻗었다.
작년 가을, 회색 페인트가 벗겨진 폐교 벽을 타고 넘었을 담쟁이넝쿨의 흔적이 폐교 옆에 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와 더불어 을씨년스럽다. 공포영화에나 나올듯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다행히 초여름 대낮의 햇빛 덕분에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반감되기는 했다. 만약 밤에 그 곁을 지난다면 아마도 나는 뛰어서 지날 것 같다.
폐교에서 조금 더 가니 바깥을 빙 둘러 노란색으로 칠해진 둥근 우물이 나왔다.
‘뭐 특별한 거 있나.
지짐 해 먹고, 고기 살 떠서 뎀뿌라나 해 먹고.
그땐 팔지도 모르고 다 먹었어.
새벽밥 해 먹고 자월도로 민어 잡으러
변또 싸가지구 그러구 가.
오늘 절이면 내일 널어.
그전에 냉장고라고 있었나.
가랑잎 있지?
도토리 딴 이파리 따다 널어놔.
여름에 쌀뜨물 받아놓고 말린 거 넣고 젓국 쪄 먹어봐.
구수하니 맛있잖아.
옛날에는 야채가 더 귀했지.
그래 배추 배가 들어왔어.
바닷물에 절여서.
바닷물로 절이지.
그때야 깨끗했지.
건져 놨다 그냥 해 먹었지…….’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나>라는 제목의 글이 노란 바탕 위에 검은색 글씨로 쓰여 있다. 할머니의 말투 그대로 보리라는 분이 옮겨 놓은 글은 마치 할머니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같아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물을 빙 둘러 쓰인 글을 끝까지 보고 싶었으나 우물곁에 바싹 붙여 놓은 제설함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슬쩍 밀어보았으나 내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설함을 조금만 떨어트려 놓았더라면 할머니의 구수한 설명을 더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소무의도를 배로만 드나들 수 있던 시절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좋은 기회를 놓치게 한 것 같아 화가 났다.
직경 2미터가량의 제법 큰 우물은 성인 허리 높이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뚜껑을 덮어놓았다. 소무의도를 세 번 방문하는 동안 우물을 들여다본 적은 없다. 당연히 폐 우물일 거라 생각했다.
이 날도 우물 앞에 사는 친절한 동네 주민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동일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물을 열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아! 무신경함이여.
아저씨가 뚜껑을 열어줘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물은 크고, 깊고, 컴컴했다. 한낮의 더위를 날려 보낼 만큼 서늘한 기운이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깊은 우물 아래에는 아직 물이 있었는데 탁해 보였다. 아저씨는, 옛날에는 하나밖에 없는 이 우물물을 섬 주민 모두가 먹고살았다, 고 간단히 설명해줬다.
두레박이 없어 물을 길을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기자기한 골목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과 나무들 사이에 넓지 않지만 밭이 보였다. 밭에는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추, 고추, 콩 등이 심겨 있었다.
그 밭 한 귀퉁이에 키가 1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상한 꽃이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굵기의 꽃대 끝에 자잘한 꽃이 수국 모양으로 붙어 있는데 처음 보는 꽃이다. 마침 밭 옆을 지나는 허리 구부정한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당근 꽃이라고 했다. 신기했다.
“당근도 꽃이 피는 줄 몰랐어요. 처음 봐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 나이 되도록 당근 꽃은 처음 봐. 사실은 이게 내 밭인데, 작년에 당근 심어놓은 걸 귀찮아서 그냥 놔뒀더니 저렇게 꽃이 피었어. 저 자리가 당근 심은 자리니까 당근 꽃인가 보다 하는 거지. 나도 몰랐어. 그냥 놔뒀다가 나중에 씨나 받으려고.”
할아버지도 나를 따라 당근 꽃을 한참 구경했다.
예전에도 세 번 소무의도를 왔지만 골목길에서 주민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다니. 섬과 육지를 연결한 무의 대교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 대교가 개통되어 육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소란스럽지 않으세요?”
내가 물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괜찮아.”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걷는 속도에 맞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참 순수한 어르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걷는 동안 곁눈질로 바라본 마을 담벼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민들의 삶과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벽화는 마을과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그 풍경을 감상하느라 걷는 걸음이 자연스레 더뎌졌다. 골목길을 걷기만 했는데도 감정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어느 집 앞에 멈춰 섰다. 어르신 한 분이 밀짚모자를 쓰고 배추밭을 돌보고 있는 그림이 벽화로 그려진 집이다. 여러 가지 깃발이 꽂혀 있는 그 집을 가리키며 할아버지는 ‘내 집’이라고 했다.
“혹시 저 그림, 할아버지 아니에요? 닮았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크게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었다.
“여기는 노인회관이야. 내가 노인회장이니까 내 집 맞지?”
할아버지의 말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맞네요. 노인회장님.”
노인회장이란 말씀에 나는 성함을 여쭤봤다. “노인 이름 알아서 뭐하게?” 라며 손사래 치시는 걸 여러 번 설득해서 겨우 ‘유 병제’란 성함을 알아냈다. 골목을 걷다가 벽에 짧은 시가 한 편 적혀있는 걸 봤었다. 지은이가 유 병제였다. 세월의 흔적에 전체 시중 일부가 사라져 유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더 자세히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은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들었다.
소무의도 내에는 카페가 없다. 혹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바다를 보며 커피 마시기 좋아하는 내가 커피가 없어도 충분했던 소무의도 골목길.
달팽이가 되어 느리게 걷다 보면 소무의도 골목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다. 다시 가면 유 병제 할아버지가 오늘처럼 웃는 모습으로 반겨줄 것 같은 그 골목길에 내 마음 살포시 놓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