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두 시간이면 당일치기 나들이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 가능한 곳, 영종도. SNS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영종도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영종도의 알려진 명소는 주말이면 넓은 주차장에 차 대기가 힘들 만큼 북적거린다. 그래서 주민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는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주말에 움직이지 않는다. 마시안 해변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나는 종종 지인들과 차를 타고 영종도 투어를 한다. 그러다가 새로 생긴 음식점이나 카페를 발견하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신다. 마시랑 카페를 발견한 날도 드라이브 중이었다.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게 꽤 큰 카페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처럼 나타났다. 한동안 마시안 해변을 찾지 않았던 까닭이다.
마시랑 카페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마시안 해변을 가면 나는 으레 마시랑 카페에 간다. 아메리카노 기준으로 오천 원인데, ‘드립도 아닌 걸 이렇게 비싼 돈 주고 마셔야 하나?’ 처음 몇 번은 고민했다. 그런데 자주 찾을수록 결코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시랑 카페와 해변 사이에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앞마당이 잘 꾸며져 있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고,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도 많다.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는 파라솔이 펼쳐져 있어 햇빛을 가려준다. 날씨가 좀 서늘한 날은 카페에 마련된 무릎 담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도 있다.
마당에 군데군데 설치된 그네의자에서 테이크 아웃한 커피와 빵을 즐길 수도 있다. 카페의 빵은 파티시에가 직접 만든다.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빵이 나오는데 맛도 훌륭하다. 마당에 있는 포토 존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포토 존에서 구도만 잘 맞추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마당 끝에 설치된 계단을 이용해 해안가를 걸을 수도 있다. 지난겨울에는 지인과 함께 해안가에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꽤 추운 날씨였는데 바다가 얼어 사진이 아주 멋있게 나왔다. 핸드폰 사진을 옮겨놓은 USB 분실로 그 멋진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건 정말 속상한 일이다.
평일에는 한산한 카페가 주말에는 앉을자리도 없이 꽉 찬다. 마치 시장통 같다. 평일에 오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걸 굳이 주말에, 더구나 오후 늦게 간 건 갑자기 열병처럼 해넘이가 그리워진 탓이다.
주말 오후, 카페의 빵은 벌써 품절되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옆집 마시안 제빵소도 마찬가지. 평일 오전에 빵이 동이 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빵이 있을 거라 여겼던 내 잘못이다.
카페 앞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사람들이 준 냥이 캔을 맛있게 먹고 있는 걸 지켜보는데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해넘이를 보러 왔으니 해넘이 때까지는 기다려.’ 마음속으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외면한 채 주문을 외웠다. 신기하게도 배고픈 느낌이 사라졌다.
카페 마당의 계단을 통해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는 온통 갯벌을 드러낸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갯벌을 걷거나 해안가를 걷는 사람들, 혹은 여유롭게 앉아서 해넘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처럼 나도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태양을 향해 걸었다. 내 집 앞을 산책하는 듯 편안했다.
태양이 붉은빛을 내며 점점 내려앉는 걸 보고 카페로 돌아오는데 마시랑 카페와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마시안 제빵소에도 잘 꾸며진 마당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게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빨간 태양의 정기를 받아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카페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마시랑 카페 마당의 해당화 열매는 주황이나 빨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붉은 태양은 해넘이 전, 물 빠진 갯벌에 자기보다 더 붉은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두 개의 태양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카페 가로등에 불빛에 나뭇잎도 붉게 물들었다. 카페 옥상에서도 해넘이를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해넘이가 완전히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다. 멀리 무의도 쪽으로 가라앉는 태양이 무의 대교 조명과 함께 하얗게 빛난다.
어둠 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넓은 갯벌이 조금씩 바다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소리다. 바다는 그렇게 제 자리를 찾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