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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플러스 Mar 01. 2021

인천개항장을 걷다

  인천대교를 넘나들 때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다리를 놓은 인간의 역사에 새삼 감탄하곤 한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해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모습도 더불어 떠오른다.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함 앞에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자연재해를 겪을 때마다 고백하게 됨도 또한 생각났다.  

  

가을 하늘과 조용히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당일치기 여행에 운치를 더해줬다. 문학을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개항장 도보 역사 여행은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개항장은 인천 중구에 속해 있다. 영종도도 행정구역상 중구에 속한다. 비록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같은 구여서 그런지 개항장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조선은 1876년(고종 13년)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됐다. 1880년부터 원산, 인천, 부산이 차례로 개항했다. 그중 인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개항장으로 역사의 현장을 많이 보존해 놓았다.


  집 앞에서 307번 버스를 타고 인천 중구청 정류장에서 내리면 아트플랫폼이다. 아트플랫폼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드라마 촬영지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2층으로 된 건물이 좌우로 한중문화관까지 늘어서 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작지만 단단한 느낌이 든다.      

  요즘은 예술창작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트플랫폼이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나라의 식량이나 물자를 일본으로 보내기 위한 창고로 쓰였던 곳이란 설명을 들을 때는 새삼 과거 일본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겨났다. 애국자여서가 아니라 듣는 누구라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 미아) 폐기에 따른 NO JAPAN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때라 더 그런 마음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또, 개항장 근처가 현덕의 「남생이」의 무대가 됐던 곳이라는 것과 옛날에는 이곳이 부두였지만 매립에 의해 오늘날 이와 같이 조성되었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역사의 현장이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아트플랫폼 칠통마당에서는 ‘인천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진영상 페스티벌’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간 관계상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일일이 감상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단체 행동이라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났다. 


  칠통마당 건너편에는 인천 서점이라는 북카페가 있다. 커피가 나오기 전에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나무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인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있다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전시된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일본풍의 건물 사이에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건물도 보였다. 한 개인집 유리창을 타고 오른 꽈리가 눈길을 끌었다.                   

                                               

  인천 개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유물과 사진들 중 특히 내 관심을 끈 것은 <월미조탕>이다. ‘조탕’은 지하 암반층에서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이를 끓여 사용하는 해수탕을 말한다. 그 시기에 지어진 공중목욕탕이 오늘날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또 야외풀장에서 자유로이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인천 개항장 근대 건축 전시관에는 개항 당시에 지어졌던 많은 건축물이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되어 있어 이해를 도왔다. 그 건축 모형 중에는 실제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전시관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여럿 있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을 기점으로 오르막의 왼쪽에는 청나라 마을이, 오른쪽에는 일본 마을이 조성돼 있다. ‘조계’는 개항장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치외 법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구역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가 더 활발하게 들어오면서 작은 ‘그들만의 나라’가 형성됐다.      

  한국 땅을 침략자들의 마음대로 내 땅이니 네 땅이니 나누어 쓰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듯하여 씁쓸하기도 했지만, 과거 우리의 어두운 역사도 보존하여 후세에 깨우치려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기도 했다.


  조계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나온다. 오늘날 자유공원으로 불리는 각국공원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모습은 웅장하고 활기찼으며 봄볕같이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이 시원함을 더해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각국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쓰였던 제물포 구락부(클럽)도 둘러보았다. 그곳은 좁았지만 1901년부터라는 작은 현판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몇 년 전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공유와 이동욱이 이곳을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같이 간 일행들과 구락부 앞에 있는 계단에 일렬로 늘어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마치 미스코리아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장 관저로 쓰였던 사택도 들러보았다. 지금은 인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 여러 직원들이 애쓰고 있다.     


  비록 수박 겉핥기 식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있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천을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나도 어느덧 인천에 터를 잡고 산 지 20년이 됐다. 그런데도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영종도 뿐 아니라 인천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다른 곳으로 떠날지 모르지만 현재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니까.      


  인천대교를 지나 다시 영종도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우리를 반기는 바다를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 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만 보면 정신없이 빠져 버리는 내게 영종도는 늘 바다를 보게 해 주는 곳이다. 그리고 다시금 일상의 삶에 힘을 주는 곳이다.   

   

  산 넘어 바다 쪽으로 일몰을 앞두고 있는 태양이, 구름이, 주변 경치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이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밝은 기운을 내뿜는 해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건 그 기운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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