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실어 보내는 편지 5. Istanbul, Turkey.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성함을 여쭤볼 겨를도 없이 헤어졌네요. 2008년 5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스치듯 만났던, 당시 신혼부부였던 한국인입니다. 뜬금없이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건 살면서 문득문득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나기 때문이에요.
당시 결혼식을 마치고 그리스 산토리니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터키 이스탄불에 들렀었지요. 결혼 전 남편의 배낭 여행지 중 가장 좋았던 곳이 터키였다고 해서, 마침 그리스에서 가까우니까 함께 가자고 해서 갔던 곳이었어요.
시내에 있는 작은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호텔에 들어서니 웰컴 드링크로 애플 티를 내어주며 친절한 직원이 밤에 볼 수 있는 공연을 추천해주었지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 친절한 직원 덕에 끌리듯 공연을 예약했고, 그 날밤 우리는 공연장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지요. 바로 그 버스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타 계셨어요. 백발이 성성하신 두 분은 환한 웃음으로 우릴 맞아주셨지요. 우리에게 학생이냐고 물으셨는데 우리가 신혼여행 온 거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연장에 도착한 후, 배정된 테이블에 앉았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테이블에 그 나라 국기를 놓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테이블엔 태극기가 놓였지요. 한참 터키의 각종 춤과 공연을 관람하며 식사를 한 후 관중들을 무대로 불러 춤을 추는 시간도 있었어요. Miss America, Miss France, Miss Germany…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올라가자 남편이 저에게도 나가라고 부추겼어요. 저는 무대 공포증도 있는 데다 몸치거든요. 제가 거길 어떻게 올라가겠어요. 근데 자꾸 올라가라며 우리 테이블에 놓여있던 태극기를 막 흔드니까 무대에서 저를 향해 말했지요. "미스 코리아!" 아 저 말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요. 우리나라에선 전국에서 제일 예쁘고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가 있거든요. 키가 170이 넘는 늘씬한 여자들, 얼굴이 작고 예쁜 그런 여자들이 드레스를 입고, 수영복을 입고 자신을 뽐내는 그런 대회요. 우리나라에선 ‘미스코리아’라 하면 보통 그런 여자들을 떠올리는데 저에게 미스코리아라고 하니까…. 사실 나는 한국 여자니까 미스코리아가 이상한 말이 아닌데 그게 너무 웃기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결국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어요. 얼굴이 빨개진 채 무대를 등지고 앉아버렸지요.
그리고 잠시 후 열린 댄스대회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온 분들의 끼와 재능을 맘껏 구경했지요.
그날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셔틀에 올랐고, 그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났어요. 두 분과 공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왜 무대에 나가지 않았냐고 말씀하셔서 또 제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우리 호텔 앞에 섰고, 두 분께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는데 우리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죠.
“Have a happy life!”
처음엔 당연히 할아버지가 'Have a good trip!'이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대부분 여행지에선 그렇게 인사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신혼부부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아 그 순간 정말 감동받았답니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내렸는데 그 말의 여운이 그 후로도 오래갔어요.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가끔 그 말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작하는 우리 부부의 앞길을 축복해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한 삶을 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을 자주 되뇌면서 ‘행복하게 살자’, ‘행복한 삶을 누리자’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그렇게 인사드릴 걸 그랬어요.
“Have a happy life!”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는 물론,
30대에도 40대에도 혹은 70대에도,
혼자서도 둘이서도 셋이서도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야 하니까요.
지금이라도 인사드립니다.
“Have a happy life!”
행복하게 지내실 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