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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Sep 25. 2019

어쩌다 보니 떠돌이 인생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준비하며



2008년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을 마포에 얻었다.

둘 다 회사가 여의도였으므로 회사 다니기 딱 좋은 거리였다. 그런데 전세계약이 만료되던 2010년 집주인은 집을 매매하기 원했고 우린 별 수 없이 집을 비워야 했다. (그때 그 집을 샀다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우린 집을 살 생각이 그땐 아예 없었다.)


이사를 어디로 할까 알아보다 친정 가까운 고양시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년 후 약속이나 한 듯 집주인은 또 매매로 집을 내놓았다. 우리는 또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없었기에 이사를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간 지 얼마 안 된 2012년 초 출산을 앞두고 있던 3월에 남편이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을 받았다. 그것도 머나먼 나라 브라질로!

남편 혼자 먼저 출국했고 그 후 나는 친정에서 지내며 출산 후 이듬해 2013년 1월에 갓난아기와 함께 브라질로 갔다.

브라질에서의 첫 여행지_ 빠라찌

브라질에서의 생활은 재미있었다.

매일같이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지냈고 집 근처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브라질 인근 나라로 여행하는 것까지 일상이 여행 같았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브라질에서의 생활이 좋았다.

 

 한국인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서 살아서 말 통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없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애들 친구 만들어주고... 그렇게 한국에서와 똑같이 지냈다.


한국에서와 똑같이 지냈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는데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지냈지만 외국생활에 대한 장점은 별로 누리지 못했다. 핑계지만 어린 아기를 돌봐야 해서 브라질어를 공부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외국 친구를 사귈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어느 동네에 집을 얻을까 고민했다.

브라질에서 만난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어느 동네 사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목동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의 회사가 여의도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동 언저리에 살고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일반적으로 목동은 학군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집이 비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아파트가 오래되어서 매매가는 비쌀지언정 전세가는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내가 알아보던 시기가 이상하게 전세 기근이었는데 목동 단지는 워낙 크다 보니 매물이 그나마 한 두 개 있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목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와 함께 항상 즐겁게 걸어 다녔던 길

특별히 학군 욕심을 내고 들어온 건 아니었는데 목동에 살다 보니 동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낡은 내부와 복잡한 주차장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 두 가지 단점을 빼면 다른 건 다 좋았다.

오래된 아파트인 만큼 오랜 세월 자라온 나무가 좋았고, 백화점, 마트, 음식점, 도서관, 학원 등 안정적으로 갖춰진 여러 가지 생활환경이 좋았다. 가능하다면 계속 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동에 이사 온 2년 후, 나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전세계약 연장이 되었다. 목동아파트는 재건축을 염두에 두고 구입해둔 주인들이 많아서인지 전세연장이 잘 되는 듯했다. 그래서 결혼 후 처음으로! 연속 4년을 한 집에서 사는 영광을 누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을 사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도 생겼다. 매일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놀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재미있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남편회사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 헐.

그것도 목동과는 완전히 먼 하남시로.

그동안의 나의 생활 반경은 고양시부터 여의도, 영등포, 마포, 목동까지였는데 하남이 웬 말인가.

그러나 목동에서 하남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은 너무 멀고, 아이는 2019년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또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남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목동의 동네 친구 엄마가 나에게 왜 그렇게 정착을 안 하고 이 곳 저곳 옮겨 다니냐고.... 그게 뭐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계속 옮겨 다니는 나의 인생.


그래도 이 곳에서는 아이를 쭉 키우고 싶었다.

적어도 초등학교는 입학 한 곳에서 졸업까지 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또 해외 발령이 났다.

또 머나먼 나라 브라질로.


이쯤 되면 '떠돌이 인생'이 나의 운명인 것일까.

몇 해 전 엄마가 친구들과 절에 놀러 갔다가 한 보살께 나의 사주를 물었다고 하셨다.

그분은 내 사주를 보더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 사주라고 했다고.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남편에게 브라질 발령은 다 나 때문이라며 웃었었는데.

또 브라질에 가게 되었다.


이번에 브라질에 가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으니 나만의 시간을 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엔 브라질어를 좀 공부해보고 싶다. 그래서 브라질 친구를 좀 사귀고도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브라질 일상을 글로, 그림으로 많이 기록하고 싶다.

지난번엔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


이 곳으로 이사 와서 그림도 배우고, 엄마들이랑 볼링도 치러 다니고 참 재미있었는데.

목동에서부터 시작한 독서모임도 너무 재미있는데..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가려니 속이 쓰리지만 그곳에서도 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지.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여행지_'포르투 지 갈링냐스'에서 본 브라질 지도 모양 땅


이번에는 부디 제대로 외국생활을 경험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어딜 가든 적응은 참 잘하는 나와,

어려서부터 어린이집 옮길 때마다 최고로 적응 잘 해준 우리 딸.

그리고 영어와 포어로 일해야 하는 우리 남편까지.

잘 적응해서 재미있고 행복한 브라질 생활이 되자!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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