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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Aug 09. 2020

40대에 하는 '나' 탐구 생활

나를 나답게 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아기가 너무 예뻤다. 어린아이들의 뽀송뽀송한 피부와 해맑은 웃음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쯤 ‘내가 여자라서 좋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라서 좋다’고 생각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었다. 아이를 갖는 것도, 낳는 것도 다 힘들었지만, 키우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밤새도록 자지 않는 아이를 안았다가 눕혔다가 어르다가 졸다가 그렇게 지새우는 밤이 이어졌다. 아이는 낮과 밤이 바뀐 데다 잠이 들어도 길게 자지 못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나는 눈에 띄게 늙어갔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자라서 뒤집고, 기고, 서고, 걷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그만둔 일을 다시 하고 싶었고, 자유롭게 책 보고, 영화 보고, 미술관에 가고, 여행하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신분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엄마’라는 신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생산적인 일, 일에 대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즈음 남편이 브라질로 발령이 났고, 8개월 아기와 함께 브라질로 이사했다. 브라질에서 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한편으로 마음 편했다. 한국에서 만약 이렇게 아이만 키우고 있었다면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 브라질에서 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경력단절은 이미 4년이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계속 내 손으로 키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보니 이전처럼 매일 출근하는 일은 거절했고,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 수준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는 불규칙했고, 그렇다 보니 돈이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뭘 잘하는가’, ‘뭘 좋아하는가’, ‘뭘 하고 싶은가.’ 사실 원래 직업인 ‘방송작가’는 성격에 맞는 직업이었다. 결코 편안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힘들어도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문제는 구멍 난 경력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위치였다. 내가 원하는, 입맛에 맞는 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나이 들수록 더욱 일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가장 오래 해온 일이 그것인데 그것이 힘들어지니 마음이 힘들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고민했다. 여행을 좋아하니까 여행 글쓰기를 배워볼까 싶어 싹 여행연구소 수업도 들어보고, 아이 책을 보다 보니 나도 아이를 위한 책을 써보고 싶어 어린이 책 쓰기 강좌도 찾아들어보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찾기 위해 애썼다. 브런치에 여행기를 올려보기도 하고, 어린이 책 쓰기 강좌에서 만난 친구들과 스터디도 하면서 나의 미래, 나의 일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수없이 자괴감에 시달렸다. 나는 왜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는가, 왜 그간 힘겹게 쌓아온 경력은 힘이 없는가, 대학에서의 공부는 무슨 의미인가, 결국엔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하는 데 온 힘을 써버려야 하는 이 삶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러다 지난해, 좋은 기회가 있어 어린이 책을 한 권 쓰게 되었다. 드디어 내가 원래 하던 분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계약서를 쓸 때의 그 두근두근 설렘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던 일이 글 쓰는 일이었으므로 그 범주에 속하는 일이지만, 또 분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으므로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건 없었다.  

 초등학교 전 학년의 국어, 사회, 도덕 교과서를 샅샅이 살펴야 했고, 수많은 자료를 찾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기쁘게, 최선을 다했다.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이 나의 아이가 보기에 딱 좋은 책이라는 것이 나를 한없이 들뜨게 했다. 책을 쓰면서도 다음 책은 어떤 걸 쓸까? 또 의뢰가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런데 그 책이 나오기도 전에 남편이 두 번째 해외 발령을 받았다. 이번에도 브라질이었다.


 이제 뭔가 나만의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는데, 또 일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해외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셋이서 함께 대자연을 누리고, 낯선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즐거움이 기대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도 제법 커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열려있고, 나 역시 전보다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을 테니 브라질에서 지내면서 할 수 있는 나의 일을 구상해보려 한다. 


 이제 곧 어린이 책이 출간될 예정이고, 지난주엔 온라인으로 방송원고 아르바이트가 들어와서 원고를 썼다. 책을 기다리면서, 원고를 쓰면서, 그리고 또 다른 책을 구상하면서 나는 내 일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나답게 살게 한다. 이전의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았던 ‘나’에서 ‘엄마’라는 신분이 더해진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제 진짜 ‘나’이다. 작가로서, 엄마로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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