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호자는 누구인가
기억하는가, 1주차에 지독히 아팠던 우리들을. 핫소스와 말랑이가 차례로 아프고 나서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기 시작한 나는 이틀밤을 꼼짝없이 방에서 죽어 있었다.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긴 밤이었는데, 정말로 시간이 초 단위로 느껴지는 지난한 고통이 이어졌다. 내가 얼마나 아픈것인지 느껴보려 일부러 내 볼 안쪽을 씹어보기도 했는데,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자 급격히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번 독감의 고통을 짐종국씨는 감히 운동을 4일간 하지도 못할 고통이라 표현했는데, 나는 분만실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내가 떠올랐다. 아이가 나올때의 진통이 너무 커서 나중에 다 찢어진 회음부를 꿰메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던 그때의 내가. 누군가가 나의 뇌를 가지고 전기회로 실험을 하는 듯한 미칠듯한 고통때문에 볼 안쪽을 아무리 씹어도, 아랫 입술을 아무리 뜯어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뜨거운 머리로 도저히 잠들수가 없어 눈을 감고 최대한 불편한 자세로 몸을 이리저리 배배 꼬아보았다. 몸이라도 불편하면 이 지끈거리는 머리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빨리 아침이 밝기를 바라며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시간은 30분, 40분, 더디게 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여기서 죽을 것 같아"라며 일단 엉엉 울었는데, 그때 시각이 2시 30분. 아직도 수 많은 밤을 건너야 했다. 해열제를 아무리 떄려박아도, 4000mg의 아세트아미노펜을 이미 복용한 것 같은데 열이 내릴 생각을 안했다. 그제서야 현대의 전쟁에서 생화학 무기가 왜 금지되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이 바이러스라면 모르던 것도 알아내서 불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누가 나에게 해열제,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진통제, 필리핀에는 타미플루는 없지만 필로폰은 있잖아? 누가 나에게 준다 하면 감사하며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손목 발목을 꺾고 온몸을 이리저리 뒤집어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울다 지쳐 잠이라도 들면 나을까봐 울기도 했지만, 지끈함에 맹맹함이 추가 될 뿐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5박 6일을 꼬박 열과 함께 지냈다. 식사시간에만 좀비처럼 일어나 겨우 밥을 먹었고, 주말이 되자 아이들은 완전히 나아 캠퍼스 내의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놀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잦은 기침과 멍한 기운에 차마 물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책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토요일 낮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에 캠퍼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미 1주차에 충분히 친해진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몰이나 해변으로 떠났고, 부모님 없이 홀로 온 몇몇 중고등학생들만이 이따금씩 로비에 출현해서 넷플릭스를 보다 갔다. 4주 중에 한 주를 통으로 날린게 너무너무 아까우면서도, 죽을 줄 알았던 우리 말랑이가 다시 웃으며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 이러다 뒤지는거 아닌가' 싶게 아팠던 머리가 활자를 읽을 수 있을만큼 가라앉았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외국에서 아프니 정말 무서웠다.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픽하면 장염과 편도염으로 쓰러져서 입원 신세를 지면서도 외국에 나가서만큼은 무슨 버프라도 받은 듯이 쌩쌩해져서 하루에 2만보씩 걸으면서도 컨디션을 유지하던 나였다. 그 흔한 물갈이 경험 한 번 없던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 첫 해외 체류에서, 그것도 첫 주에 너무 잔인한 트레이닝을 거쳤다. 처음 가 본 필리핀 병원은, 물론 진료를 받고 전문가의 처방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너무나도 열악해서 그냥 참게 되었다. 어차피 그들은 정말로 청진기 하나로 진료를 한다. 목구멍을 봐주지도 않고, 콧구멍을 봐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귓구멍까지 확인해주시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의 꼼꼼함이 너무 그리웠다. 문득 문득 드는 최악을 향한 상상에 힘들었다. 우리 말랑이가 폐렴이면 어쩌지? 독감으로 죽는 사람도 있나? 내가 여기서 독감으로 죽어버리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이런 말도 안되는 최악들이 지끈한 머리 가운데 한참을 떠돌아서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무엇보다 타미플루 없이, 진짜로 나의 면역체계와 타이레놀로만 이겨낸 이 독감을, 그 흔한 진통제와 수액 한 대 맞을 수 없이 버텨낸 이 독감을 나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짜로 애 낳을때보다 무서웠고, 시간이 흐르지 않았고, 잘못한 것은 없지만 회개하고 싶었고, 주마등이 스치기에도 너무 긴 시간이라 그냥 오래 괴로웠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은 그 한국인 간호사가 있는 병원, 맨 처음 소개받았지만 한시간 반 거리에다가 당일 진료가 불가능했던 병원은 독감 검사 및 타미플루 처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