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2주만에 한번 놀아보까
1주차를 온가족 독감으로 여기가 아동병원 입원실인지 세부인지 모르게 보내고, 사람이 거의 없는 캠펏스에서 잔잔한 주말을 보낸 뒤, 2주차는 드디어 세부에서의 '일상'을 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아침 먹고 아이들 수업 보내고 나도 같이 수업 듣고, 저녁먹고 수영하고 도마뱀 잡고 농구하면 하루 끝. 몇 가지 귀찮은 것들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온 일상에 행복, 하긴 이르다. 여기는 세부니까 세부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가야지!
어학원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세부사파리가 있다. 듣자하니 마닐라에 있는 사파리보다 규모가 더 큰, 필리핀에서 손꼽히는 사파리라 했다. 누군가는 에버랜드보다 낫다기에 안갈수가 없어서 바로 예약. 클룩으로 입장권 주말 3인 사니 거의 10만원에 4가족이 함께 벤을 빌려 각각 1000페소씩 지불했다. 9시에 출발하며 10시에 사파리 도착. 그런데 멀미가 장난이 아니다. 필리핀의 차들은 약간 뼈대만 있는 느낌인데 우리나라 차들이 승차감이 진짜 좋았구나, 하는 역체감을 몸소 했다. 길도 넓지도 않고,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프니나 툭툭이 들이 아무데나 서서 속도를 많이 내지도 못하지만, 그래서인지 급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추월을 하고, 그리 반듯하지 않은 도로 상황은 그대로 바퀴를 지나 완충제 하나 없는 의자를 건너 우리의 몸으로 전달되었다. 특히 사파리는 산 중턱에 있어서 구불구불한 길이 많은데다가 지금 한 차선을 막고 공사중이어서 정체와 흔들림이 심했다. 멀미약을 챙겨갈걸 제일 많이 후회한 부분!
그래도 사파리에 도착을 했다. 사파리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동물이 아니라 직원들이었는데, 넓은 사파리의 각 공간마다 직원이 서서 계속해서 안내를 해준다. 그런데 엄청 친절하게! 마치 5성급 호텔 입구에서 나의 발걸음에 맞추어 문을 딱 열어주는 호텔리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순차적으로 고개 숙여 나를 맞이해주는 직원들처럼 말이다. 에버랜드의 반가움이 약간의 억텐과 고정된 하이텐션 멘트에 그렇지 못한 하관이라면, 이 친구들은 아낌없이 윗니 아랫니를 모두 개방하며 나를 맞아줬다. 사파리 내에 투어버스가 있는데 투어버스에 내리는 속도에 맞춰서 인사를 시작하고,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든 것을 안내해준다! 사전에 사파리에 대해 조사를 다 해야가나, 너무 커서 다 못보면 어떡하지, 등등 몇가지의 걱정들이 있었지만 다 쓸데 없었던 것. 베이스캠프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두리번 거리면 직원이 먼저 와서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물어보고 친절하게 루트를 알려준다.
핫소스의 원픽은 우습게도 베이스캠프에 있던 버드월드인데, 앵무새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다. 단돈 50페소에 단호박이 올려진 접시를 받을 수 있고, 앵무새가 접시를 든 핫소스 손에 올라와 먹이를 먹는 동안 관찰이 가능하다. 우리 핫소스는 들어가자마자 앵무새 먹이를 주고,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또 하고 싶다고 해서 가보았는데 3시가 지나니 먹이주기 체험이 끝난 것 같았다.
화이트 라이언이었을까, 화이트 타이거였을까. 라이언이었던 것 같다.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맨 처음 보았지만 사실 별거 없었다. 화이트인지 옐로우인지 알게 뭐람. 그렇지만 코스마다 사파리투어버스 앞에서 직접 설명을 해주는 직원이 있어 좋았다. 말랑이는 기린을 보더니 "쥬랍!!!!"이라며 크게 소리를 쳤고, 얼룩말을 제일 좋아했다. 신기했던 것은 초식동물의 경우 별 다른 울타리 없이 그냥 풀어놓는 것 같았는데, 그러다보니 공작이 우리랑 같이 길을 걷기도 하고, 타조가 다가오기도 하고, 말 친척같이 생긴 애들이 그냥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얘네가 돌아다니는 게 신기하면서도 무서운지 말랑이는 자꾸만 도망을 갔다. 악어는 진짜 크고 개체수가 많았는데, 악어 먹이주기 체험도 있어서 둘 다 해보았다. 가까이서 주는 것은 아니고 바구니에 냉동 닭 4분의 1 정도를 받아서 집게로 위에서 떨어뜨리면 악어들이 아래에서 받아 먹는 것이다. 닭 한덩이에 100페소래서 2초정도 고민했지만, 악어 밥을 언제 어디서 줘보겠어, 둘 다 하렴. 악어들은 거의 동상처럼 움직이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심지어 숨도 안쉬는 것처럼 멈춰있다가 위에서 닭고기가 떨어지면 잽싸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날썌게 받아 먹는다. 그것도 정말 고개만 까딱 해서 휙 낚아채는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극한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시 45분부터는 쇼가 시작되는데, 버드쇼를 시작으로 호랑이 먹이주기, 기린 먹이주기 쇼들이 차례로 진행된다. 버드쇼는 에버랜드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는데, 조금 다른 점은 여기 앵무새는 zebra 스펠링을 안다는 것과, 5+8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쇼에서는 마지막에 동물들과 사진을 찍게 해주는데, 내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전문 사진사가 찍어주고 나중에 베이스캠프에서 사진을 확인한 뒤 인화해가는 시스템이다. 사진은 한장에 250페소. 결코 싸지 않지만 버드쇼와 호랑이 먹이주기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각각 인화해서 핫소스와 말랑이에게 선물로 줬다. 이게 다 낭만 아니겠는가. 이런 데 오면 추억 하나 정도 사가도 좋잖아?
이곳의 또 하나 장점은 레스토랑 뷰가 기가 막히다. 맛도 기가 막혔으면 좋겠지만, 맛은 쏘쏘했고 대신 뷰가 멋지다. 베이스캠프 레스토랑에서는 아래로 캥거루가 보이고 앞으로는 울창한 밀림이 펼쳐진다. 아프리카구역 아래 있는 레스토랑은 오른쪽으로는 백조가, 왼쪽으로는 기린이 보인다. 그리고 화장실의 세면대 앞 부분이 개방되어 있는데, 벽 없이 앞의 식물들을 느끼게 하는 인테리어가 자연친화적이라 느껴졌다. 필리핀 와서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뷰였다.
요즘 왜 이렇게 인기인지 모르겠을 카피바라도 한참을 보고, 산책하는 공작 무리 사진도 좀 찍고, 베이스캠프보다 아래에 있는 무슨 정원에서 술래잡기도 하다보니 갈 시간이 되었다. 충분히 즐겼는데도 10시부터 4시까지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기념품샵 들러서 핫소스는 세부사파리 적힌 반팔도 사고, 말랑이는 무슨 손가락 인형을 꼭 사야한다고 해서 사줬다. 입장료 3인 주말 10만원에 왕복교통비 1000페소, 식사와 간식 900페소, 기념품 800페소, 사진 2장 500페소, 먹이주기 250페소 정도 사용해서 총 20만원 즈음에 즐거운 토요일 나들이를 잘 보내고 왔다.
요약하면 생각보다 안큼, 생각보다 동선 안꼬임, 생각보다 자유로움, 생각보다 직원들의 애티튜드와 레스토랑 뷰가 굉장히 고급스러움, 먹이주기는 무조건 일찍 할 것, 사진찍는 사람들 중간중간 많이 배치되어 있으니 부담없이 찍고 한두장 인화해 가면 좋은 듯, 5시까지 놀아도 놀았을 것 같은데 왔다갔다 멀미 너무 심하니 적당히 놀고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