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장보기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by 첫둘셋

원래대로라면 '한달살이 잔혹사 절정'을 써야 하겠지만, 난 원래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사람이니 오늘 있었던 일을 쓰도록 하겠다. 오늘은 주변 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수학만 잘하고 계산을 못하는 나는 3인 가족이 29일간 체류할 예정인 곳에 수건을 9장만 가져오는 무모함을 보여줬고, 그 결과 손목 통증을 이유로 단 한 번도 스스로 해 본 적 없는 손빨래를 이곳 필리핀에서 매일 하게 생긴것이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수건과 다 떨어져가는 비누와 기타 잡화 등을 구매하고자 가장 가까운 Gaisano Grand Mall로 향했다.


지프니 이용법을 알고 나서는 어딜 가든 크게 어렵지 않은데, 세부는 길이 많지도 않아서 대충 방향만 맞는 곳에서 대충 손을 흔들고 있다가 기사랑 눈이 마주치면 내가 갈 곳을 크게 말하고 기사가 끄덕이면 탑승하면 된다. 그것도 모르는 나는 첫날 데스크에 가서 지프니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해? Bus stop이 따로 있어? 지프니나 버스는 얼마 간격으로 한 대 씩 와? 노선도는 어디서 볼 수 있어? 목적지마다 요금이 달라? 등등 뭐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봤었다. 데스크의 젊은 청년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나가서 길 건너면 아무거나 탈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는데, 사실이었다. 신호등도 없는 동네에 bus stop이 있을리가 없는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무튼 몇 번 타보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혼자서 가이사노에 가기 위해 지프니를 탔다. 요금도 다들 대충 내길래 나도 오늘은 대충 내봤다. 몰 입구에서 어학원의 다른 학부모님을 만났는데 데스크 직원과 동행하여 마트에 왔더라. 나를 보고 여길 혼자오셨어요? o0o 라고 하시며 놀란 눈초리를 보내는데 조금은 으쓱해졌다.


가이사노는 SM mall에 비하면 작았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약간 창고형 매장 느낌이 났고 동네 홈플러스 정도의 느낌이었다. 수건 2개, 비치타월 2개, 비누 두어개, 애들 간식 이것저것 생각 없이 담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줄 선 모양새가 조금 쎄하다. 줄이 아주 길다. 마트 진열대의 한 섹션 만큼 계산대 줄이 늘어서 있다. 믿기지가 않아 물어 봤다. 익스큐즈 미, 이거 줄 맞아요? 맞아요. 물건이 조금 적으면 저쪽에 바구니 하나 짜리 계산대가 있어요. 땡큐.


하지만 바구니 하나 짜리 계산대도 사람이 무지 많은 걸. 이마트 쓱데이 정도 아니고서야 한국에서 이런 일은 잘 없다. 심지어 사람 많은 걸 아주 싫어하는 나는 이마트 쓱데이에는 일부러 롯데마트를 가는 사람이다. 내 앞에 카트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세어보려 했지만 너무 많았다. 웃긴 광경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카트를 좁은 통로의 왼쪽에 질서있게 붙여 놓고, 오른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바구니에 물건은 얼마나 많은지, 왜 그렇게 많은 과자와 통조림을 한번에 사야 하는 지 궁금할 정도였다. 또 그 많은 물건을 계산대로 가져가서 다 올려 놓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또 고른다. 계산대 앞에서 최종적으로 필요 없을 것 같은 물건은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바구니에 던져놓는다. 이런 충격적인 모습들 가운데서 30분정도 기다리면 되려나 하고 기다리던 것이 한시간이 되고, 한시간 반이 되고, 결국 꼬박 2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계산을 마치고 나올 수가 있었다. 나중에는 너무너무 화가나서 머리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내 소중한 2시간! 가만히 서서 2시간을 보내버리다니! 뭐 대단한 것 산 것도 아니고 수건 몇장이랑 과자 좀 샀는데 2시간을 기다리게 하다니! 돌아오는 길에 어학원에서 만난 현지 학부모는 내가 그 마켓에 다녀왔다고 말하니 "어? 거기 줄 3시간 서야하는 곳이잖아. 이 근처에 그만한 마켓이 없어서 맨날 사람 엄청 많아."라고 말해줬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 안갔을 것이다.


여긴 진짜 불편하다. 오늘 배운 표헌 중에는 deadlist deadline이라는 게 있었는데, 필리핀 사람들이 하도 deadline을 안지키니까 진짜 최종의 최종의 최종으로 미뤄서 진짜로 언제까지 내야되는데요?에 해당하는 deadlist deadline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세상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여기 사람들은 길고 풍성한 머리를 crowning glory로 여겨 단발머리를 하지 않는다면서, 헤어드라이어를 대부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 길고 풍성한 머리에서 미처 말리지 못한 물이 뚝뚝 떨어지면, 달리는 지프니에서 머리를 창 밖으로(사실 창이라고 할 것도 없다.) 내밀고 바람으로 말린다고 했다. 29일이 holiday라 어학원에서는 수업을 안한다고 공지를 때렸다가 오늘 하루만에 철회했는데, 이 사실이 teacher들에게 전달이 안 된 상황을 놓고도 불평이 있었다. 그들은 늘 우리에게 공지를 안해준다며, 원래 holiday에 일을 하면 수당을 더 줘야해서 쉬라고 했다가 다시 일을 시키는 모양인데 요즘에는 그나마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protest를 일으키라고 했지만,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teacher가 absent하면 본인이 대신 sub를 한다고 하는데, 그에 따른 보상이나 수당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굴러가도 되나, 이만한 규모의 어학원이. 무튼 여기는 굴러가긴 굴러간다. 뭐 어떻게든.


c동 기숙사는 진짜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바로 앞에 가라오케가 있어서 사람들이 새벽 3시까지 노래를 한다는 것이다. 노래를 또 잘하면 모르겠는데 웅으오앙ㅇ어우앋왕이 이런 느낌이다. 몇시까지 부르나 너무 빡쳐서 들어보니 대충 3시 전후로 끝나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미친 닭들이 새벽 3시부터 코크둘루두를 외친다. 너무 말도 안되서 왜 필리핀 닭들은 해가 없는데 우냐고 물어봤더니, 걔네 원래 그랬다고 티처가 대답해줬다. 걔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나는 내가 소음에 이렇게 민감한 줄도 몰랐다. 나는 내가 되게 그냥 잘 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와보니 나는 밖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미치고 팔짝 뛰는 사람이고매, 침대 매트리스의 스프링 때문에 멀미를 느끼는 예민보스였다. 한국에서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스스로 제일 편안한 환경을 셋팅해놓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외진 곳으로 이사를 간 것 부터 시작해서 침대 매트리스는 과학적으로 시몬스에서 맞췄고, 암막 커튼까지 달아놓았으니 거슬릴 것이 무엇이 있냔 말인가! 그런데 이런 환경의, highway 바로 옆이라 밤 새도록 오토바이 배기음, 차량 클락션소리가 들리고, 가라오케에서 거나하게 취한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가며 음도 모르고 뜻도 모를 노래를 불러대고, 침대 스프링은 과학 실험실에서 쓸 법한 복원력과 탄성이 최고인 곳에서, 내가 어떻게 잠이 들 수 있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보다 약한 수압에 복장이 터지는 내가 있는가 하면, 또 여기서 즐겁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한끼에 500원도 안할 것 같은 식단에 툴툴거리는 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이곳을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같이 손빨래를 하고 싶지 않아 며칠을 쌓아두고는 대충 비눗물에 풀어 휘휘 젓고 대충 털어 포개 놓는 내가 있는가 하면, 또 매일같이 아이들이 입었던 옷을 가지런히 건조대에 걸어두는 사람들도 있다.


Time to talk 수업에서 맨투맨으로 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과는 이런저런 대화를 진짜 많이 하는데, 그녀는 아이가 5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내는 사실은 조카라고 한다. 남동생이 너무 어릴 때 아이를 낳았고, 아이 엄마는 먼 지역 사람이라 그곳으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니 자기가 키우겠다고 해서 키우는 중이라고 한다. 첫쨰가 21살이고 막내가 10살이라고 하는데, 나는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랐다. 조카를, 입양해서 키우다니! 그치만 필리핀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너무 많은 희생이 있는 일이야, 그럼 너의 인생은 어떡해? 라고 물어보니 이건 나에게 희생이 아니야, 나는 내 가족의 아이를 내가 책임지고 싶어, 이게 내 인생이야. 라고 답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다섯씩 기르지 않아, 왜냐면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하거든, 그리고 그 좋은 것은 대부분 물질적 부유함일 때가 많아, 사회적으로 좋은 지위를 물려주고 싶어하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는 수준의 서포터를 해주고 싶어해, 그게 한국의 스탠다드거든, 그래서 한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어. 그렇지만, 필리핀에서 조카를 입양해서 키우는 일은 흔해, 우리는 우리와 피를 나눈 사람들이 함께 곁에 머물기를 원해, blood relationship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줘. 우리는 서로를 케어해. 나의 형제자매들도 다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어. 우리는 서로를 원해.


그래, 그래서 너의 인생, 나의 인생이 무엇이냐. 나의 인생이 무엇이냐.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엄마가 되고 나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나'만의 그 인생이 무엇이냐.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 나는 과연 무엇이냐. 엄마가 되었음에도 '나'를 잃지 않으려 발악하는 내 삶은 또 무엇이냐. 희생이라는 단어조차 거부하는, But, how about your own life?라는 질문에 That's my life!라고 대답하는, 그 삶은 또 무엇이냐.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너무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너무 많이 생각하며 살아서, 그 생각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또, 여기서 이들의 삶을 잘 관찰해봐야지. 무엇이 that's my life! 라고 할 수 있을지, 단칸방의 교실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은 또 어떤지, 배우고 가야지. 한국에서는 이미 old fashion인 모습들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진짜로 어떻게 10년 전이랑 똑같냐, 발전이 없냐 싶은, 그치만 또 그래도 되는 그들의 삶. 여유라는 것을 배울 수만 있다면, 여기가 적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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