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만 내가 아니야
어젯밤 갑자기 부어오른 편도에 오늘은 오전 배드민턴을 가지 못하고 남편이 아침에 사다준 약을 먹고 푹 잤다. 자다 깨서 생각해 보니, 나 3월에 처음으로 늦잠을 잤잖아!?
남들은 푹 쉰다고 부러워하는 연구년이지만, 월수금은 배드민턴 오전반으로, 화목은 출근으로 세상에 하루도 늘어지게 잔 적이 없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놀아야 하고 일요일은 교회가야 하니, 맙소사 여전히 안식이 없는 나의 안식년이다. 심지어 나는 재택근무를 또 얼마나 성실히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제출한 계획서의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또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class101 일 년 정기구독을 하고 배우며 그리며 집에서도 작업 삼매경이다. 어째 근무할 때보다 우리 아들들 얼굴 보고 얘기할 시간이 더 없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꿈에서도 그리드를 만들고 있고, 자다 깨서도 아이패드를 켜서 수정을 한다.
나의 이런 면은 진짜로 나에게 약이자 독이다. 뭔가가 빠르게 완성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가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불만족스러운 이런 면. 일종의 이런 강박 덕분에 공부를 굉장히 잘했고,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이 강박은 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서 한번 어떤 일을 시작하면 뇌를 하루도 쉬지 못하게 24시간 가동한다. 오히려 출퇴근할 때는 퇴근시간 뒤에는 딱 우리 아들들과의 시간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1년짜리 거대 프로젝트가 돌고 있으니 집중도 안된다. "엄마 공부하니까 너희들끼리 놀아"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고, 이런.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안다, 별거 아닌 일임을. 내가 하는 일들은 다 작은 범주의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작은 일도 소중히 해내야만 하는 성정을 지녔으므로, 반드시 잘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므로 지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출근도 안 했는데 편도가 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말이다.
나는 조금만 신경 쓰면 이렇게 부어버려서 나의 하루이틀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잡아먹어버리는 이놈의 편도가 그동안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붓기는 왜 이렇게 자주 붓고 열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나고 타이밍은 또 왜 이렇게 지랄 맞은 건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당최 이 편도염은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이, 일단 편도가 붓고 열이 나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게 된다. 항생제, 해열제, 소염제, 스테로이드 등등을 때려 박고 나야 잠잠해지는 편도 때문에 인생의 많은 순간을 손해 봤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나는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이것만 아니었으면 나는 더 번지르르한 직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만 아니었으면 나는 더 완벽히 무엇인가를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 실제로 2년 전에는 겨울방학을 맞아 이놈의 편도를 떼버릴 계획을 세웠었지만, 무통주사를 24시간 달고도 엉덩이주사를 하루 2번을 맞아야 한다는 후기에 마음을 고이 접었더랬다. 출산을 해 본 여자들은 저 정도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거든. 무섭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뀐 것은 우리 둘째 때문이다. 우리 둘째는 사실 좀 비상하다. 7살 때 6자리 더하기 6자리를 했다. 세 자리 나누기 한자리도 하고, 두 자리 곱하기 두 자리도 한다. 그뿐인가? 민첩성이 좋고 상황판단이 빨라 어지간한 구기종목을 다 잘한다. 축구를 엄청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시키면 딱이겠다 싶었다. 또래보다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형아들이랑 붙어도 지지 않는다. 과제집착력도 뛰어나서 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둘째의 문제점이라면 성격이다. 우리 둘째는 수줍음이 너~~~~~무 많고 낯을 너~~~~~무 가리고 갈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아들을 축구학원에 보내는 것? 시도했지만 대차게 실패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어디에도 없는 나의 보호자, 우리 아들이 싫어하는 3가지이다. 암만 다리가 빠르고 공을 잘 차면 뭘 하나? 축구는 11명이 같이 뛰는 경기인데, 우리 아들은 11명이랑 같이 있지도 못한다. 아이고 축구선수 물 건너갔다 야.
그러면서 든 생각이 우리 둘째의 재능을 생각할 때에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성격을 개선한다? 14년간 교육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단호히 말하자면 성격은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들과 덜 갈등을 빚기 위해 사회화될 뿐이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좀 더 둥글둥글 둥그러질 뿐이다. 우리 아들에게 타고난 재능을 살리기 위해, 네가 부끄럽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겠지만 성격을 좀 죽이고 11명과 팀이 돼서 해야만 하는 스포츠 선수가 되어라!라고 하는 것은 거의 저주와도 같은 바람인 것이다. 내 아들은 '재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격'으로도 이루어졌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나'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부분들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그동안 똑똑한 나, 칭찬받는 나, 모든 것에 두루두루 재능이 있는 나, 남들보다 대체로 우월한 나만을 나로 인정하고 살았다.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대표적으로 망할 놈의 편도, 그리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100원 주고 산 병아리 정도의 면역체계, 복싱 2년+댄스 2년+요가 2년 등등 누구보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체력, 뭐 이런 것들)은 일단은 내가 아니거나, 나를 불행하게 하는 어떤 신의 장치라든가, 개선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이것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살진 않을 텐데'류의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비관으로 빠져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우리 둘째를 보며 나의 이것들도 나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성격이 우리 둘째 아들인 것처럼, 나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재능+건강까지가 나로구나! 사실 이 몸뚱이로 36년 정도 살았으면 나도 안다. 앞으로의 36년도 계속 이럴 것이라는 것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 중에 제일 안 건강한 사람으로 늘 살게 될 것임을. 술, 담배, 커피 등등을 전혀 안 하고 매일 야채를 먹으며 성인이 된 이후로 꾸준히 주 3회 운동을 하고 있지만 만 32세에 고지혈증을 진단받은 게 어쩔 수 없는 나임을. 게다가 강박, 불안, 완벽주의가 다 있어서 만 30세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위경련과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스트레스성 어지러움을 달고 사는 것이 나임을.
받아들이고자 하고 나니 오늘 아침 푹 쉬는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다. 내 성격에 아프지도 않았으면 하루도 안 쉬고 달렸을 텐데, 덕분에 하루 푹 쉬어간다 생각하며 처음으로 편도에게 다정히 말을 건넸다.(다행히 열은 나지 않아서 저녁에 연습실 빌려서 친구 결혼식 축가 안무 연습도 하고 왔다. 그렇지만 참 나도 나다..) 그래, 이렇게 종종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쓰레기 같은 몸뚱이가 아니었더라면! 내 바람대로 공대에 들어가서 삼성 같은 대기업에 연구원 취직해서 주말 없이 밤낮없이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다가 결혼도 못하고 아기도 못 낳고 과로로 쓰러져서 단명했을 팔자다.
아, 이것은 밤낮없이 일하는 분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체력이 된다면, 마음에 조급함이 없다면, 진정으로 일을 사랑한다면 엄청 멋지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공대에 가고 싶었고 진심으로 연구원이 되고 싶었고 진심으로 밤낮없이 일하고 싶었는데, 진짜 너무 자주 아파서, 매년 입원을 해대서, 아빠가 너는 그러면 죽는다고 해서, 교대 가서 지금까지 살아는 있지만 어쨌든 결국 내가 못 간 공대에 한이 맺혔던 사람입니다.
무튼, 36년이나 살고 돌아보니 나는 그렇게 살면 죽는 사람이 맞았다. 나의 이상은 그것을 감당할만한 정신적 여유와 육체적 건강까지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둘 다 없었으므로, 이것을 굉장히 수치스러워했는데, 마흔에 가까워서야 이것까지가 나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 이것까지가 '나'이고, 나의 역량은 이만큼이 맞다. 내가 자주 아픈 이유는 아프기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안 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는 이 정도의 체력이 알맞다.
그냥 이게 나니까,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살자. 내일모레 불혹인데 불혹 같은 소리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