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경통독] 민수기의 하나님

민수기의 인간들

by 첫둘셋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그 다음 민수기. 창세기는 못해도 50번은 읽은 것 같고, 출애굽기도 40번은 읽은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모르겠다. 레위기에서 위기를 맞는 성경통독은 그래서 민수기에 닿지를 못하다가, 간만에 차분히 앞에서부터 성경 읽는 기념 민수기 후기.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끌어 낸 이스라엘과 늘 함께 하셨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민9:15~16)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머무는 곳에는 늘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함께하며 하나님의 동행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다. 이 구름이 움직이지 않고 성막 위에 머물면 이스라엘도 진영에 머물고, 떠오르면 행진하였다고 하니 이스라엘도 그 구름이 하나님의 길잡이 혹은 도우심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행여 광야에 머무는 동안 낮에 너무 뜨거울까, 밤에 너무 추울까 구름과 불로 살피시며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어떤 말들을 했을까?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민11:4~6)


그래, 고기가 먹고 싶었을 수 있다. 맨날 만나만 먹으니 반찬투정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선조들의 말씀이 있지 아니한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뭘 먹었다고? 애굽에 있었을 때 이스라엘은 종이었다. 무려 하나님이, 매일같이 구름과 불로 인도하면서, 하늘에서 말도 안되게 만나를 내려 매일같이 먹게 하시는데,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부자 나라의 종으로 이것저것 맛있게 먹던 때가 낫다고 회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나? 심지어 이들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그저 고기가 먹고 싶어서 애굽 종살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냐면,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민11:19~20)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아주셨는데, 그게 한두마리가 아니라 아주 한달을 내내 먹어봐라 이것들아 하시며 떼로 보내주시는 홍수법을 쓰셨다. 그니까 애굽이고 나발이고 그냥 '하나님, 제가 만나가 너무 물려서요ㅠ_ㅜ 메추라기 한 마리만 시켜주시면 안될까요 ㅠ_ㅜ?' 라고만 했어도 이렇게 평생 먹을 메추라기 단번에 먹지 않았겠지. 쯧쯔다 쯧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정신 차렸을까?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2~3)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은 거기 사는 자들이 너무 강해서 싸울 수 없다고 말하며 통곡을 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 죽게되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갈 걸!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울고있는 이스라엘을 달래려 노력한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이니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격양된 이스라엘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 죽이려 하는데... 다시 하나님 등장!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14:30, 34)


약속 받은 땅을 눈 앞에 두고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하는 신세로 만드셨다. 이제 민수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대충 감이 오시는가? 여기까지만 봐도 이스라엘이 이 뒤에는 말을 잘 들을 턱이 없다는 느낌이 올 것이다. 이 뒤에는 더더더 가관인데 고라와 다단과 온이 당을 짓고 지휘관 250명을 모아서 모세를 거스른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 이런걸까. 이들은 어떻게 되었냐면,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민16:30)


산채로 땅에 삼켜져 죽었다. 이들을 옹호하던 14700명도 순식간에 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네가 감히 여호와를 거슬러? 죽음뿐이었던 구약시대..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5)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5)


이러고 또 불뱀한테 물려 죽는다. 너무나 뻔한 패턴, 반복되는 패턴인데 이스라엘은 왜 정신을 못 차렸을까? 왜 불평불만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았을텐데도! 자신의 생과 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단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째서 불평불만을 하다 광야에서 죽고, 땅에 먹혀 죽고, 염병으로 죽고, 뱀에 물려 죽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말들, 한탄들, 불만들을 보면 반복되는 어휘가 있다. '없다'는 것.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것도 없고. 이 없는 것들이 얼마나 자질구레하냐면 생선도 없고 부추도 없고 참외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찡찡찡찡. 애굽에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그것도 있었는데 찡찡찡. '없는' 것만 보니 만족할 수가 있나. 만족할 수가 없으니 후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만족'이라는 것은 참 도달하기가 어렵다. 만족스러운 삶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서 만족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만족은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볼 줄 아는 기술이다. 비록 광야에 있지만 종 된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하고, 여러가지 음식을 먹지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성실하게 맺혀있는 만나를 보며 당연함보다는 기적과도 같은 놀람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정해진 거처가 없지만 앞으로 살게 될 곳은 주인의 집이 아닌 자신의 땅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어야하고, 마실 물이 없지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바다도 가르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쉽게 만족하는 사람을 도태되는 것 처럼 느끼게 한다.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기를 종용하고, 지금의 벌이에 만족하냐며 매일 나의 월급을 묻는다. 하루에 몇분만 더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난리고, 뭐라도 하지 않는 자는 하루아침에 벼락 거지가 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고쳐놓아 더 나은 인간의 형태를 하게 한다. 더욱 만족스러운 형태의 인간. 자기만족.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며.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방법이라며. 그래서 더 만족스러워지셨습니까?


22장부터는 발람이라는 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그 뒤로는 염병 후에 살아있는 자들을 계수하신다. 그리고 안식일, 초하루, 유월절, 칠칠절, 속죄일, 장막절 등의 지켜야 할 절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경계들을 알려주신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거역하고 반역해도, 그래도 사랑하는 나의 이스라엘, 내가 축복할 나의 자녀들아. 너희들 하나하나를 내가 세어 지켜줄 것이다. 나의 절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거라. 그리고 여기까지 너에게 허락하겠다. 이 땅에서 번성하고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거라.


특별히 하나님은 지켜야 할 절기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거듭, 거듭.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딜 수 없어 한다. 하지만 만족이 내가 도달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어떨까.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허락해 주신 것들을 내가 관찰하고 찾아내는 능력이라면 어떨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한 자리에 나아가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읽는 내내 '이스라엘은 멍청해~ 저런 축복을 받고도 말을 저렇게 해서 다 죽어버리네~' 라고 했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이다. 끊임없는 불만족의 세상속에서, 없는 것만 두드러지는 세상 속에서, 컴플렉스만 극대화 되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마음은 무엇일까. 약속의 땅에 도달한다는 확신, 이미 허락된 것을 바라보며 인도해주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가 끝없이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높이 높이 올라가 사우론의 눈알이 되려느냐, 여기 잔뜩 핀 들풀이 되어라, 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우론의 눈알이 되고 싶은건 나의 욕심이고,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은 나는 나의 생과 사도 주관할 수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머물라 하시는 곳에 머물고, 떠나라 하실 때에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민수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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