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미워한 사람아.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하나님께서는 늘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매일 느낀다. 신에 대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난 진짜 운이 좋은 듯'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신앙을 가진 나로서는 '그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매번 이렇게 보여주실 수가 있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올해 정말 운이 좋게 학습연구년이 되었는데, 이 마저도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신(내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손길이 느껴진다. 시작하는 나의 마음이 불순한 것이었음에도 나의 치기 어림과 방향모를 열정과 시기인지 질투인지 분노인지 알 수도 없는 마음들까지 얼기설기 모아 모아, 선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이 느껴진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라도 알게 하시니 감사하다.
오늘은 중고등부 친구들과 CBS 예배에 갔다. 연구년을 맞아 야심 차게(!)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첫째 주 목요일에 학생들을 데리고 예배에 간다. 사실 내가 예배드리러 간다는 마음보다는, 중고등부 친구들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가고 있다.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은 다르니까, 교회 주일 예배는 조금 딱딱할 수 있으니,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찬양하다 보면 조금 더 와닿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주님이, 너도 똑같이 사랑하신단다. 대단하지? 이걸 말해주고 싶어.
오늘의 말씀은 "탕자는 회개하지 않았다."였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져가서, 허랑방탕하게 써버리고, 굶어 죽게 생기자 "아빠한테 돌아가야지!"한 것이다. 대단히 잘못했고 대단히 뉘우치고 대단히 결심을 한 게 아니고, 돈은 다 썼고, 살길은 막막하니, 다시 한번 염치없지만, 여기서 죽기는 애매하니까 집으로 돌아가나 보자, 뭐 이 정도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먼발치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는 그를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가 끌어안는다. 돈 다 썼니? 어디에 썼니? 도박했니? 너 아직도 담배 피우니? 직장은 구했니? 거기는 살만하디? 꼴이 이게 뭐니? 외국 나갔다 오면서 기념품은 없니? 아니 무슨 말투가 앙칼진 부잣집 사모님 같지만 뭐 여하튼, 이런 일언반구도 않고 그냥 안아주신다. 이게 하나님 사랑의 본질이다.
오랫동안 미워한 사람이 있었다. 미워한 게 아닌가, 저주했다에 가까운가. 알아서 뒈져버렸으면 좋겠고,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지 않으면 좋겠고, 노년이 말짱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대대손손 그 머리에 화가 가득했으면 하는 사람. 내 손에 피를 흘리긴 싫으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지만, 마음 깊이 혐오하고 속으로 수백 번도 더 난도질을 했던 사람. 나의 불안한 정신과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형성했던 사람이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죽어서 만나도 죽여버리고 싶은 그런.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났다. 늘 어딘가에서 잘 못살다가 부고나 들어야지 했는데, 나의 이 마음조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또한 하나님이 오래도록 기다리는 영혼일 것이기에. 그의 죄와 허물마저 용서해 주시는 그 사랑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 사랑으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심을 또 내가 믿고 있기에.
예배의 순간에 떠올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신기하게 생각이 났다. 우리가 모두 죄인 되었을 때에,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셨으므로, 내가 그에게 자격을 논할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미움으로 덮을 수 있을까. 자격 없는 나 또한 그런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평생을 미워할 것 같던 사람인데, 그래도 하나님이 그 또한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인정이 되었다. 싫지만, 밉지만, 이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도 이제 이 갈 곳 없는 미움의 굴레에서, 그래서 결국 나를 잡아먹던 분노와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길었다. 길고도 긴 마음이었다. 분노였고, 불안이었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깨뜨리는 마음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서,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기 싫어서.
하지만 결국, 그 크신 사랑 앞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 모두 '가장 최고의 것'으로 허락해 주신 것들임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래 걸렸지만 결국 이렇게 끝낼 수 있게 내 마음을 이끌어주셨다. 매일 밤 먹는 한 알의 약이 내게 평안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는데, 온전한 해방은 말씀으로 해주시는 것이 느껴진다.
여러모로 신기한 밤이다. '평생'이라고 생각하던 마음들도 결국엔 이렇게 놓아줄 수 있게 되는구나. 이런 날이 오네. 어느 순간부터 성장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둔해졌는데, 오늘은 그래도 오랜만에 열어본 콩나물시루처럼, 눈에 띄게 자라난 날이 아닐까 싶어 기록한다.
그래서 나는 다 괜찮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만큼이나 받고 있고,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