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해도 할 게 이렇게 많다니!
오늘은 수요일. 배드민턴 가는 날이다!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배드민턴 레슨, 이제 그래도 걸음마 정도는 떼도 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아침에 눈 뜨는 건 진짜 힘든데 그래도 가서 레슨 받으면 대충 하고 싶지는 않다. 20~30분 정도 세 명이서 한번 레슨 받으면 2500보에서 3000보 정도 스텝을 밟더라. 날이 따뜻해지니 땀이 비 오듯 줄줄줄.
오늘 들은 코치님의 충격 발언은 "8월 정도면 클리어 치실 수 있으시겠네요."
아, 제가 지금 치는 건 클리어가 아니었군요. 암 낫 클리어. 예스..
그리고 모든 종목이 그렇겠지만 운동 동호회에는 코치님이 너무 많다. 오늘 스매싱 알려주신 코치님 감사드립니다^^ 남편 등짝 때리는 걸 생각하라면서 "양말은 왜 뒤집어서 벗어놓았어!!!! 똑바로 벗어놓으라고 했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제가 세탁 담당이 아니라서요.. 제가 듣는 말이라 감정이입이 안되어서.. 스매싱을 하나도 못 침^_^
왜 모든 운동들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째서 행복하게 운동할 수는 없는 걸까. 처음에는 나뭇가지 들고 새털이나 쳤을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규격화된 채와 잘 만들어진 공을 가지고 그립을 바꿔가며 쳐야 하는 걸까. 어째서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공을 넘겨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 걸까. 그냥 통통 치고 놀면 재밌을 것 같은데, 팡팡 소리가 나지 않으면 혼이 나는 걸까. 개구리 점프를 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걸까. 사실 경기는 안 해도 좋아, 난 그냥 즐기고 싶으니까. 나는 내 발도 못 빼고 화장실 문 닫아서 다치기도 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 공간지각능력으로 배드민턴을 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과욕이 아닐까. 그러니까 저는 공을 보고 치는 게 맞습니다, 코치님. 저는 문 닫다가 머리도 자주 박습니다.
그리고 땀이 줄줄 흘러 집에 가서 샤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남편은 그냥 바로 도청을 가자고 했는데 이걸 나중에 후회할 줄이야. 남편의 10년 지난 여권 재발급받으러 도청 바로 갔고요~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너어어어무 많고 주위 차량이 너어어어어무 혼잡해서 여긴 무슨 맛집이야? 했던 쌍다리 앞 회관에서 양념족발 맛있게 먹었다.
부부가 쌍으로 쉬니까 평일 점심에 맛집도 가고 아주 팔자가 좋다. 운동하고 먹으니 더 꿀맛이다. 그렇지만 양념족발 중짜에 공깃밥 하나 시켰는데, 다 못 먹어서 남은 거 싸왔다. 그리고 배가 너무 불러서, 날이 너무 좋아서 산책을 하기로! 마침 근처에 겹벚꽃 명소가 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씻고 오자 했잖아, 이 인간아! 이 예쁜 곳을 땀에 흠뻑 젖어서+배드민턴 운동복을 입은 채로 가게 되다니 ㅜㅜ 주차를 엄청 걱정했는데 완전 럭키비키로 나오는 차에 바로 붙어서 집어넣음 뀨
겹벚꽃 명소는 매~~~년 오는데 남편이랑 둘이 오니까 더 좋았다. 물론 눈앞의 계단 보고 아찔하긴 했지만 (이미 우리는 레슨+도청 방문으로 5000보 정도 걸은 상태였다.) 저려오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부여잡고 무사히 등반 완료. 이미 절정은 지났지만, 그래서 바닥까지 분홍빛으로 물든 겹벚꽃 터널을 걸었다.
꽃놀이는 꽃을 보러 가는 것도 있지만, 꽃놀이에 온 사람들을 보려고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꽃놀이에 온 사람들은 다 예쁘게 차려입었다. 다들 활짝 웃고 있고, 다들 서로를 최대한 예쁘게 담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꽃도, 당신도 예쁘다고 칭찬해 주고, 웃긴 포즈도 용기 내서 취해본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게 재미있다. 다 행복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 같고, 나도 마냥 같이 행복해도 될 것 같다. 너무너무 귀여운 아기와 함께 꽃놀이 나온 가족들 사진도 찍어드렸다. 이제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되어 보이던데 저 가족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행복들을 만들어 갈까? 한없이 고되지만 지나고 보면 붙잡아 두고 싶을 만큼 아쉬운 길이다.
남편이랑 예쁜 꽃 많이 보고, 서로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 남편이 휴직을 하니까 확실히 성격이 유해져서 내 사진도 쪼그리고 찍어준다. 평소 같으면 화내고 이제 그만 가자고 할 법 한데, 계속된 요구에도 포즈도 다 취해줬다. 일을 쉬니까 확실히 다정해져서 좋다. 돈도 좋지만 나는 시간이 더 좋아. 같이 있는 시간, 다정한 남편.
그리고 집에 와서 씻고, 낮잠 때리고, 아들이 배고프다고 깨워서 저녁 챙겨주고.
그리고 저녁에 마지막 축가 연습을 위해 연습실에 모인 우리!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빡세게 연습했다.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로 다가온 우리의 축가! 부디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좋아해 주면 좋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보다 친구 남편을 더 자주 만났던 한 달... 재밌었다!
별일 없지만 되게 빡빡했던 백수의 하루였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날씨랑 감정이 블루투스로 연동된 인간) 여한이 없는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일 없는데, 되게 좋다. 남편이랑 같이 쉬는 것도 너무 좋고, 오전에 운동하는 것도 너무 좋고, 평일 점심에 대기 없이 맛집 가는 것도 너무 좋다. 집 근처에 예쁜 명소들이 많은 것도 좋고, 저녁에 만날 친구들이 있는 것도 좋고, 친구의 결혼식에 기억에 남을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냥 여유가 있어서 그런가 다 좋네. 언젠가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지만, 당장 학교로 복귀하면 또 하루하루 쳐내며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이랬던 날도 있었다~ 이런 태평성대가 있었다~ 기억하기 위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