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죄다 망해버리면 어떡해요......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이번엔 [옥순] 언니의 차례이다. 옥순 언니는 정말로 귀하게 자란 게 분명하다. 온실 속 화초가 있다면 옥순이고, 애지중지, 금지옥엽, 행여나 닳을까 쳐다도 못 보는 귀한 딸내미였을 것이다. 타인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호감에 응당 반응할 것이라 믿는 자세는 그녀의 자존감이라기보다는 오만함에 가까웠다. 어묵탕을 반드시 생수로 끓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혹시 그녀가 ㅇㅂㅇ이라는 브랜드를 말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환경공학과 교수님이 대한민국 수돗물의 안정성에 대하여 충분한 보증을 해주셨지만, 그래도 옥순언니의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그녀에겐 수돗물 먹방은 갠지스 강물을 손으로 퍼 마시는 기안 84의 야생 버라이어티와도 같은 급이었으리라.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을 수 있다. 마시는 물은 무조건 생수 혹은 정수물이라든지, 내가 말하면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당연히 그 행위를 대신해주는 성장과정이었다든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서 나의 기분의 살피고 말을 걸어주었다든지. 특별히 딸내미를 그렇게 예뻐하며 공주처럼 키우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를 갖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나도 부모인지라 충분히 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나의 귀한 자식 얼마나 예쁘고 아깝고 소중할까!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애초에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개체로서 누군가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옥순언니의 태도는 부모를 떠날 생각도, 독립할 생각도 없는 막냇동생 같은 느낌을 (상대방에게도) 주었다. 오빠가 아닌 새로운 아빠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의 보호자나 반려자가 아닌 나를 보호하고 챙겨줄 사람을 찾는 듯했다. 만약 반대로, 역지사지해서 상대방 남성이 옥순에게 와서 엄마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왜 내 기분 몰라줘? 나 생수로 물 끓여줘. 나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라 네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해. 나 이것 좀 갖다 줘. 등등) 분명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옥순언니는, 이성에게서 아빠만큼의 역할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당신의 반려자를 찾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의 부모일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현숙] 언니 간다. 현숙언니, 정신 차리세요. 어째서 열 번 찍히는 '나무'역할을 자처하고 있으신가요? 현숙언니는 이상형을 만났다면서! 어째서 흘러가는 운명에, 물결에, 바람에 그 이상형을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냔 말이야! 살면서 이상형을 만나기는 매우 쉽지 않다. 현숙언니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자가 잘생긴 남자 만나면 봉황 본 듯이 몇 년을 곱씹는다는 인터넷 밈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용모, 신장, 매너, 말투 모든 것이 부합하는 '이상형'을 만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로 모두가 합의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모두의 이상형은 차은우이지 않은가! 하지만 차은우는 하나인걸!)을 하고 육각형이니 어쩌니 하며 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매력을 다른 면으로 보상받으려고도 하고, "그래도 애는 착해"라는 말로 퉁도 쳐보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일생일대의 이상형 앞에서 보여주는 현숙언니의 모습은 너무 답답하다.
심지어 나는 현숙언니가 광수를 이성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도 안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숙언니 본인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숙언니의 미모에, 성격에, 스펙에, 말투에 그간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헛 도끼질을 해댔을까? 열 번이 아니라 백번 찍은 남자도 있을 것이다. 현숙언니는 그리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이성으로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랬던 과거다 없다고 말하지 말라. 현숙언니를 지금까지 내버려 둔 것도 아직 나는 믿기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언니는 이미 알고 있다. 광수는 절대로, 죽어도, 남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육각형이고 나발이고도 일단 '이성으로서' 뭔가가 통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현숙언니 제발, 광수 그만 애타게 하고 어서 당신의 길을 걸어가소서. 제발 오늘 밤 내 마음에 사이다 한잔을 허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