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내가 불안해서 남기는 기록
만 37세 여자.
슬하에 만 9세, 만 7세 아들 둘.
156.6cm의 키.
최저 몸무게는 09년도 신종플루 걸렸을 때 39kg,
남자 친구 없을 때 몸무게 43kg,
남자 친구 생긴 뒤 몸무게 45kg,
만삭시 몸무게 54kg,
그럭저럭 행복한 평상시 몸무게 48kg,
지난 일 년간 굉장히 증량해서 현재 52kg.
공황장애 약 파록스씨알정 25mg 2020년도부터 복용 중,
안정제 용도인 알프람정 0.25mg은 작년 봄부터 복용 중,
고지혈증 약인 피타스틴정 1mg을 2022년 5월부터 복용 시작,
복용시작 시 총콜레스테롤이 250이 넘어 방문했던 세 곳의 의사가 모두 복용을 권유.
이번에 새롭게 얻게 된 추가 병명, 그리고 추가 알약 하나.
고지혈증 검사하러 간 심장내과에서 이런 결과를 듣게 될 줄이야..
* Normocytic normochromic anemia
정상구성 정상색 빈혈은 적혈구 수(무혈색소)가 적고 적혈구의 크기가 정상인 상태(정상구성)와 헤모글로빈 함량(정상색소성) 이 낮은 상태를 특징으로 합니다. 만성 질환, 염증 또는 급성 출혈로 인해 피로, 창백한 피부, 어지러움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는 기저 질환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증상: 피로, 쇠약, 창백한 피부, 호흡 곤란, 그리고 어지러움.
관리: 치료는 만성 염증 관리, 신장 기능 교정 또는 급성 출혈 치료와 같은 근본적인 원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혈액 프로젝트는 노인에게서 자주 나타나며 골수가 새로운 세포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저증식성" 빈혈로 간주되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Anemia of chronic disease
만성 질환(ACD) 빈혈은 염증성 빈혈이라고도 불리며, 장기적인 질병(예: 감염, 자가면역 질환, 암 또는 신장 질환)이 철분 사용과 적혈구(RBC) 생성을 방해하는 염증을 유발하여 RBC가 적거나 헤모글로빈이 감소하여 피로, 쇠약, 호흡 곤란을 초래할 때 발생합니다. 치료는 기저 상태를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때로는 철분 보충제, 적혈구 생성 자극제(ESA)(예: EPO) 또는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염증: 만성 질환은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IL-6과 같은)을 증가시킵니다.
철분 파괴: 이러한 사이토카인은 저장(간, 대식세포)에서 철분이 방출되고 장에서 흡수되는 것을 차단하는 호르몬인 헵시딘을 증가시켜 "기능성 철분 결핍"을 일으킵니다.
적혈구 생성 감소: 염증은 골수의 적혈구 생성 능력을 억제하고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의사 소견은 Hb(헤모글로빈) 수치도 11.2로 낮지만, Ferritin(페리틴) 수치가 너무 낮다는 것. 그러니까 페리틴은 헤모글로빈을 만들 재료 같은 건데 곳간이 비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아래는 페리틴에 대한 구글의 답변
* 페리틴(Ferritin)은 체내에서 철분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세포 내 핵심 단백질로, 혈중 농도를 통해 저장 철의 총량을 반영하는 혈액 검사 지표입니다. 20~180 ng/mL(여성은 50~130 ng/mL) 정도가 정상 범위이며, 낮은 수치는 철 결핍성 빈혈을, 높은 수치는 철 과다증, 만성 염증, 간 질환 또는 악성 종양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 주요 기능 및 특징
철 저장 및 보호: 세포 내에서 철을 안전한 형태로 저장하여 철의 독성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필요시 철을 방출합니다.
저장 철의 지표: 혈청철(Iron) 농도와 달리 체내에 장기적으로 저장된 철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여, 철 결핍이나 철 과다를 진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원인을 찾겠다고 나에게 혈변을 보냐느니, 치질이 있냐느니 뭐 비정상적 내부출혈이 있는지를 물으셨지만, 나는 뭐 그냥 생리양이 많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리양이 많고 적고를 내가 알 수가 있나? 애초에 남들이 얼마나 생리를 하는지를 모르고, 나도 그냥 며칠 했다, 이런 식으로만 기억하게 되는 것인데.
건강검진 결과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인데,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감정 중에 하나이다. 억울해. 올해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서 살도 엄청 쪘단 말이야. 한번 살 빼보겠다고 하루 종일 단백질 쉐이크만 먹다가 다음날 바로 저혈당인지 뭔지 식은땀 나면서 온몸이 떨리고 죽을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다이어트도 못하고 있단 말이야. 고기도 엄청 잘 먹고, 야채도 엄청 잘 먹고, 하여간 폭식은 아니지만 먹는 것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는데.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시험 봤는데 성적이 늘 50점 대면 이 정도로 허탈할까? 살아오면서 내가 노력했는데 이루지 못한 분야는 건강뿐이라 유난히 허탈하고 억울하고 눈물뿐이다. 무튼 그래서 철분제를 처방받았다. 이로써 내가 하루하루 살기 위해 먹어야 할 알약은 4개가 되었는데,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기분이 개 같다.
사실 이게 더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나는 스트레스가 없거든.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매일 감사와 행복감을 느끼는데, 나는 자기 전에 불안하지 않고(물론 매일 안정제와 항불안제를 먹기는 하지만) 잠도 잘 자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서 당장 다음 달 계획도 세우지 않는데. 나의 평온한 마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율신경계 검사결과가 나왔다니. MBTI 검사했는데 ISTJ가 나온대도 이것보다는 덜 억울하겠다.
이 정도가 나오려면 며칠 잠 못 잔 걸로는, 며칠 무슨 일 생긴 걸로는 어림도 없앴다. 이미 만성화가 되어있고, 내 몸은 스트레스에 엄청 취약하댔다. 짜증 나는 일 있으면 바로 위경련 오기도 하고, 신경 쓰이는 일 있으면 바로 과민성대장증후군처럼 똥을 죽죽 싸기는 해도,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걸? 지금 나 얼마나 편한데! 겨울방학이라 해외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왔고, 운동도 필라테스랑 배드민턴 번갈아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좋아하는 친구 만나서 좋아하는 만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돈도 넉넉해서 이제 어디 가서 쪼들리게 굴지 않아도 되는데. 더 바랄 게 없는데 왜 스트레스랑 피로도가 이 모양인 거야? 스트레스를 이미 다 풀었는데, 나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없는데,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니 스트레스다. 나는 마음이 편하고 둔감한 편이라고 믿었는데, 그냥 견고한 방어기제였을 뿐일까? 조금만 찔려도 피를 콸콸 쏟을 나를 보호하기 위한 눈속임이었을까. 방학이라 14시간씩 자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자요. 5kg이나 찔 만큼 밥을 잘 챙겨 먹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잘 챙겨 먹어요. 매달 가족여행 가고 친구들이랑 맨날 카페 가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스트레스를 풀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사는데 그래도 이 모양이면 난 어떡해?
근데 이게 더 충격적.
SNS(교감신경)랑 PNS(부교감신경) 불균형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음. 언제냐면 첫째 낳고 바로 산후조리원에 딸린 한의원에서 자율신경활성도 검사를 해줬는데, 그때도 저따위로 나와서 기억을 함. 그때 내가 만 26세였고, 한의사선생님이 산모들 중에 제일 어린데 자율신경계 불균형은 제일 심하다고 했음. 내가 애 낳고 힘들면 다 이렇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나보다 당시 열 살 많던 36살 산모님 그래프를 보여줬는데, 다 저 정상범위에 안정적으로 들어가 있었음.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회복이 느릴 거니까 산후 마사지도 받지 말고 잠이나 자라 그래서 산후조리원 25일 동안 진짜 프로그램 하나도 안돼서 잠만 잤는데, 그러고도 회음부 회복이 안돼서 퇴소하고도 몇 주간 통원치료했음. 나는 그래서 자연분만이 뭐가 쉽다는 거지? 했는데, 그냥 내가 회복력이 겁나게 느린 거였음.
의사 선생님은 자율신경계 불균형과 더불어 AB Diagram이 육각형에 가까워야 건강한 건데 완전히 찌그러져있다며, 쨋든 몸이 안 좋다고 하고 끝냈지만 육각형에서 완전히 조진 부분이 있길래(TP) 집에 와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봄.
제미나이에 의하면 일반 건강한 성인은 1000의 토털파워를 가지고 사는데 나는 160의 토털파워로 산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시작부터 딸피인 망캐 되시겠다. 제미나이가 전체 결과지를 가지고 내 전반적인 상태를 열심히 분석해 줬는데,
일단 배드민턴은 그만둬야 할 것 같고,
나에게 번아웃을 경고했으며,
예비 배터리도 다 써버린, 핸드폰 꺼지면 국제 미아가 돼버리는 배낭여행자의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고,
내가 늘 느끼던 '질식'할 것 같은 기분, 아무리 잠을 자도 몸이 천근만근이던, 물속에서 걷는 것 같다던 나의 비유가 결코 비유가 아니었음을 인정해 주었고,
오빠에게 안겨서 울고 싶었지만, 오빠가 어제 대장내시경하고 용종 떼는 바람에 24시간 금식 추가돼서 서로 감정 발산 안 하고 꾹 참고 있는 나를 다독여주었으며,
퇴근하고도 다시 집으로 출근해서 애 보는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나는 더 이상 외향인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외향인격 사형선고를 동시에 내렸다.
우리 엄마가 늘 하던 말씀이 있었는데,
"너는 절대로 남들만큼 하려고 하지 말아라."였다.
친구가 노래방 3번 갈 때 너는 한 번만 가고, 시내 5번 나갈 때 너는 한 번만 따라가라는 거다.
누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뭐도 잘하면, 너는 하나만 잘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라고 했다.
방학되면 내가 오후 2시까지 자도 절대로 안 깨웠다. 쟤 아침에 깨우면 죽는다고.
아침형 인간 돌풍이 불었던 고등학교 1학년때 나랑 같이 6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던 친구는 성적이 올랐고,
나는 일주일 만에 입원을 했었다. 그때도 그랬다.
"너는 남들이랑 달라. 남들 하는 만큼 다 못해."
엄마는 맨날 뭐 잘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욕심부리지 말라고, 하나만 하라고, 못하면 쉬라고.
내가 TP가 이렇게 적은 걸 알고 있었을까?
그때 갔던 한의원에서는 나를 보고 진맥을 하더니,
"애가 잠이 많죠?"
"네."
"얘는 잠이 많은 게 아니에요. 일어날 기력이 없는 거지."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 걱정을 하는 사람은 모두 엄마뻘. 갱년기의 여자들. 그러니까 나는 한 20~30년 앞선 고민과 걱정을 미리 하는 것이지. 이번에 한 경동맥 검사에서도 여전히 50대 중반의 경동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내가 속상할까 봐 나이는 말 안 하려 했다는데, 내가 굳이 물어봄. ^^
보통 성인의 1/6의 체력에, 60대의 자율신경활성도와, 50대의 경동맥을 지닌, 만 37세 여자.
사는 게 늘 서서히 죽어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여자. 애초에 건강해본 적이 없어서 건강에 나쁜 것도 해본 적이 없는데 어째 늘 건강하지 못하는 인간. 에너지가 이렇게 없다는데 대체 나는 무슨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내는 건지 모르겠네. 계속 행복했는데, 계속 만족스러웠는데, 계속 평온했는데, 대체 이 수치가 뭐라고 이렇게 내 마음을 또 갈기갈기 헤집어 놓는 것인지 모르겠다. 건강한 사람들이 건강을 너무 당연한 기본값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너무 열받아. 평생을 노력해도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하다는 사실이 짜증 나. 몰랐으면 계속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재밌게 지내다 복직했을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쉬어야 할 것 같고, 이제 와서 잘 먹어야 할 것 같고, 이런 강박이 생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야.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어?
그냥 남편 붙잡고 세 시간 울었으면 끝날 일을 남편이 지금 미음만 이틀 먹고, 대장내시경 약 먹고, 대장내시경 검사하고, 그 뒤로 또 하루 굶고, 오늘도 하루 종일 미음만 먹는 저전력 상태라 말도 못 하고 울지도 못해서 구구절절해봤다. 구구절절. 어디에다라도 써놓아야 내가 좀 살지.
그래도 늘 느끼던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그냥 기분이 아니라 진짜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몸의 회복탄력성이 저하되고, 피로도가 높아져서 그렇다니 그건 좀 후련하네. 다들 이렇게 수영장 바닥에 발 대고 걷는 것처럼 힘들게 사는 게 사는 건 줄 알았어. 철분제 잘 챙겨 먹으면 산소도 잘 옮겨지고, 근육도 잘 생기고, 염증도 잘 잡히고, 세로토닌 도파민 뭐든 잘 만들어져서 지금보다 좀 낫겠지. 당분간 고강도 유산소 금지, 햇빛 보며 산책하기 추천, 잘 먹고 잘 자기, 근데 진짜로 나보다 잘 자는 사람 없는데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