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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Sep 21. 2019

누군가 나에게 아무 조건없이 사과를 건넨다면

[픽션에세이]

여자가 화를 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 남자는 황당했다. 


그러니까... 여자가 ‘스프레이 좀 가져다 달라’

이렇게 얘기했던 걸로 들었는데,

이제 와서 여자는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

‘당신이 필요도 없는걸 가지러 가는 바람에

내가 미끄러진 것도 못 보고 더 심하게 다친 거 아니냐’

남자를 원망하고 있는 거였다. 


남자는 조목조목,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 때 여자는 청소를 하던 중이었고, 

테이블에 뭐가 눌러 붙었다며

좀 불려야 할 거 같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남자에게 “스프레이 어딨어?”라고 물어봤고,

그래서 남자는, 스프레이를 찾으러 갔던 거였는데-

그게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왜 여자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던 남자는

정말로 이해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인과관계를 따져보다가,

이내 그러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건, 

누가 무슨 말을 했느냐, 누가 먼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여자의 마음을, 달래줘야 할 타이밍이니까 / 


.........


사과하는 방법만으로도, 

사람은 여러 부류로 나뉘기도 한다.

죽어도 잘못했다는 얘긴 끝까지 안하는 사람,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그 부분은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


나는, 어떻게 사과하는 사람일까?

나는, 먼저 사과하는 사람일까?


누군가 그랬다. 먼저 사과하는 것이 항상

나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우리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 

상대의 마음을 속상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먼저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관계를 아낄 줄 아는 사람.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사과를 건넨다면,

그것 보라고, 니가 잘못하지 않았냐고,

다시 한 번 따지는 대신, 생각하자. 

이 사람에게 나는, 이만큼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조금씩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 

먼저 사과하는 것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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