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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Oct 05. 2019

우리가 '내려놓았다'고 말할 때

[픽션에세이]

바닥에 가만히 드러누워

오른 팔을 이마 위에 올리고,

여자는 눈을 감은 채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자의 생일이 있던 지난주엔,

자식들이 아무도 집에 오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러려니,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는데,

이상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운함이 자꾸 치밀어 오른다.


‘망할 것들. 전화라도 한 통 하든가’

갑자기 화가 치솟아, 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휴대폰을 옆에 던져둔다.


언제부턴가 여자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자식들한테 기대지 말자, 절대 기대하지도 말자 /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자꾸 실망하게 되는 건,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다.


가슴이 화끈거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옆집에나 가보련다.

가서, 동네 친구들이랑 수다나 떨다보면,

서운한 마음이 좀 가실 지도 모르겠다.


..................



우리가 내려놓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진짜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을까.


법륜스님은,

내려놓는 것과 현실회피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에 있다고 말한다.

내려놓으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지만

현실회피는, 반드시 재발한다고 말이다.


실망할 것이 두려워, 기대하지 않는 것-

상처받을까 두려워, 애써 모른 척 하는 것. / 

그건 어쩌면, 내려놓는 게 아니라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상처받았다면, 그렇다고 표현하기.

상처를 그대로 곪아 버리게 두지 않는다면,

다음번 상처는, 이번 상처보다 훨씬 작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상처의 크기를 점점 줄여가기.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상처받지 않을만큼 단단한 마음으로

편안한 내려놓기가 가능해질 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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