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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Oct 07. 2019

그럴듯하지 않아서 그럴듯해보이고 싶을 때

[픽션에세이]


역시... 이러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어도 그렇지..

아무리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소릴 듣고 싶었어도 그렇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벌써 몇 년을, 

헐렁한 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다가

스키니 진에 하이힐이라니.../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또각또각...

미혼 시절, 자신 있는 하이힐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삐걱삐걱...

온몸이 삐그덕 대고 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다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올까..

막 그 생각을 하는 찰나, 

누군가 뒤에서 여자를 부른다.

“아가씨! 길 좀 물읍시다.”


길을 묻는 노인에게 여자는 기분 좋게 길을 가르쳐준다.

조금 불편하면 어떤가. 

아무래도 지금 나는, 아가씨처럼 보이는 모양인데 말이다.


.............


김애란의 단편소설 <큐티클>의 여주인공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네일아트’라는 작은 사치조차

인생의 짐처럼 부담스러워하던 그녀가

숙제처럼 샵을 찾아 손톱을 다듬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큐티클을 알아봐주지 않았고,

부케를 받으려다 땀찬 겨드랑이로 시선을 끌었고,

맥주 캔을 따다가, 큐티클한 손톱을 다쳤다.


딴에는 용기를 냈으나, 지리멸렬했던 하루의 끝에,

그녀는 이렇게 독백한다.


‘힐을 신은 내 모습은 어쩐지 좀 그럴 듯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다.‘


... 알고 있다.

‘그럴 듯해 보이고 싶어한다’는 말은,

그럴듯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도 우리... 

가끔 하이힐을 신고, 가끔 질끈 묶은 머리를 풀고,

가끔 좀 불편하더라도 예쁜 옷을 입고..../

내가 그럴듯해 보일 수 있는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


그럴듯한 순간들이 모여, 예전의 그랬던 나를.. 

‘그럴듯한’ 것이 아닌, 정말 그런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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