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늬 Nov 04. 2019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상처보다 크다

[픽션에세이]

식탁 의자에 가만히 앉아,

여자는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 내 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십수년전, 첫사랑.

헤어지고 참 오랫동안 힘들었던 거 같은데

왜 그 분위기, 그 감정,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까..


한참 잊고 지낸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 낸건,

여자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술에 잔뜩 취해 제몸 하나 못 가눈 채

지금 저기, 저 작은 방문안에 누워있을

스무 살, 작은 아들때문이었다.


아들이 느끼고 있을 마음, 

영원할거라 믿은 첫사랑을 상실한 그 아픔,

그 상처에 어떤 위로를 얹어주어야 할 지 몰라

여자는 기억을 더듬고 있는 중이다. 

주섬주섬 일어나, 북어국을 끓이면서 말이다.


..................




이룬 사람보다, 못 이룬 사람이 많은 건

꿈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거쳐온 그 시간, 그 이름, 첫사랑.

그 역시, 이룬 사람보다 못 이룬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 땐 왜,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줄 알았을까,

그 사랑이 아니면 죽을것 같았을까...

그래도 이렇게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사는게 다 그렇지 뭐, 자위하며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그 때 그, 첫사랑의 아픔이

우리를 그만큼 자라게 했기 때문이리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아픔을 깨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이유를

심리학자 정혜신 박사의 얘기에서 찾아본다.

<모든게 무너져도 너는 언제나 괜찮다

당신의 상처보다, 당신은 크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보다 컸다.

지나고나니 작은 흔적으로만 남은 상처...

어쩌면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처...


누군가의 상처를 애써 내가 덮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상처보다 크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 상처 역시, 흔적으로만 남을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들이 문득 떠오르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