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식탁 의자에 가만히 앉아,
여자는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 내 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십수년전, 첫사랑.
헤어지고 참 오랫동안 힘들었던 거 같은데
왜 그 분위기, 그 감정,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까..
한참 잊고 지낸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 낸건,
여자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술에 잔뜩 취해 제몸 하나 못 가눈 채
지금 저기, 저 작은 방문안에 누워있을
스무 살, 작은 아들때문이었다.
아들이 느끼고 있을 마음,
영원할거라 믿은 첫사랑을 상실한 그 아픔,
그 상처에 어떤 위로를 얹어주어야 할 지 몰라
여자는 기억을 더듬고 있는 중이다.
주섬주섬 일어나, 북어국을 끓이면서 말이다.
..................
이룬 사람보다, 못 이룬 사람이 많은 건
꿈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거쳐온 그 시간, 그 이름, 첫사랑.
그 역시, 이룬 사람보다 못 이룬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 땐 왜,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줄 알았을까,
그 사랑이 아니면 죽을것 같았을까...
그래도 이렇게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사는게 다 그렇지 뭐, 자위하며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그 때 그, 첫사랑의 아픔이
우리를 그만큼 자라게 했기 때문이리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아픔을 깨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이유를
심리학자 정혜신 박사의 얘기에서 찾아본다.
<모든게 무너져도 너는 언제나 괜찮다
당신의 상처보다, 당신은 크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보다 컸다.
지나고나니 작은 흔적으로만 남은 상처...
어쩌면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처...
누군가의 상처를 애써 내가 덮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상처보다 크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 상처 역시, 흔적으로만 남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