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늬 Nov 03. 2019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들이 문득 떠오르기를

[픽션에세이]

공인인증서가 들어있는 USB를 찾다가

서랍 저- 안 쪽에서 툭, 하고 굴러나온 건

여자의 이름이 이니셜로 새겨진 USB였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여자의 이름과, 전 남자친구의 이름이

나란히, 하트를 가운데 두고 새겨진 것/ 


급히 처리해야 할 세무서 업무가 있는데도

여자는, 공인인증서가 든 USB 대신

이니셜이 새겨진 USB를 먼저 컴퓨터에 꽂는다. 

누구나 이렇게 하지 않겠냐고, 

누구나 이게 더 궁금하지 않겠냐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 


USB에는, 여자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커피잔에 꽂힌 빨대로 장난치는 여자의 모습같은 것.

고깃집에서 쌈을 입보다 두배쯤 크게 싸

남자에게 장난을 치는 여자의 모습 같은 것. 


그러고보니 언젠가 남자가 이 USB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니가 좋아할 만한 게 다 담겨 있다고. 

빨리 보고 싶다고 여자가 얘기하자 남자가 그랬다.

이걸 니가 보게 되는 날이, 슬픈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남자가 원하지 않았던, / 결국 그런 날이 왔다. 

이 때는 참, 행복한 일이 많았나보다.

수천장이 넘는 사진 속, 여자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



일본의 작가 마쓰이에는,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건축도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들은

본래의 것이 아닐 때가 많다고- / 

건축만 그러할까. 


삶이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우리를 한 번 웃게 하는 것들은

그 때 그랬었지- 하는 오래전의 기억 아니던가. 

그 나머지의 기억들 말이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건, 

완성되고 한참이나 지나야 알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떤 것들,

본래의 사건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같은 것들이

훗날 문득 떠올라, 우리를 웃을 수 있게 하기를 / 

몰라야 할 나머지같은 것들 말고,

푸근하고 따뜻한 나머지같은 것들만 남게 되기를 / 

그 날을 위해 오늘 이 순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살 수 있기를 / 

작가의 이전글 알아채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들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