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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Nov 01. 2019

알아채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들에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자잘한 생활용품들이 들어있는 두 번째 서랍엔,

온통 그가 사 준 물건들뿐이었다.


손톱 깎기는 물론이고, 귀이개와 면봉, 

솜과 소화제 같은 구급약품들 까지...

두 번째 서랍 안에는 온통 그의 선물들이 가득했다.


"허-"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이것들은, 그냥 선물이 아니었다.

귀이개와 면봉은 그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

손톱 깎기는, 만난 지 백일 되는 날 받은, 기념 선물-

소화제와 두통약은 매년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대신 받은 것들-

입술이 텄을 때 바르는 립글로즈는, 

2년 쯤 지난 겨울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거였다.


가난한 연인의 얘기는,

그녀가 영화나 동화책에서 보던 것처럼,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주머니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들 대신에,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을 준 적도 있었으나-


어느 새 그녀에게는...

뽑기로 뽑은 인형 대신에, 몸집보다 더 큰 곰 인형을-

플라스틱 반지 대신에, 반짝거리는 커플링을,

선물 받고 싶은 욕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


그는, 이런 날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은 그의 가난한 주머니를 참을 수 없게 된 그녀가,

연락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나게 될 줄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그러다가, 입술이 트기 시작하는 찬 겨울 날,

서랍 속에 있는 립글로즈를 무심코 바르다가 

그를 떠올리게 될 거란 걸-


손톱은, 잘라도 잘라도 자꾸 자라나서,

손톱을 깎을 때마다 무심코...

그를 그리워하게 될 거란 걸-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틀림없이 두통이 함께 오는 그녀가,

소화제 두 알과 두통약을 함께 삼킬 때마다,

그에게 많이 미안해지게 될 거란 걸-


그는... 이렇게 될 거란 걸, 정말로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손톱을 깎다 말고,

그녀는 두 번째 서랍을 빼들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쏟아 붓는다.


세면대에 있는 칫솔도, 비누도,

머리빗도, 검은 머리끈들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가난한 그의 주머니가 추워져서 떠나왔는데,

그가 선물한 물건들과 방안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뒤늦게 알아버려서.../


..................


먼저 알아채지 못하고 버린 사랑은,

어느 때고, 미안한 날이, 반드시 오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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