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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Nov 26. 2019

세상 끝까지 달려도 결코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

[픽션에세이]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남) “니네 말이야! 이제 그만 진실을 밝힐 때도 되지 않았어? 

     맞지? 둘이 사귀는 거?”


테이블 저쪽 끝에 앉은 친구의 질문 하나에,

북적이던 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소주잔만 비우는 친구-

무슨 말인지,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는 친구-

질문을 던진 친구에게, 그런 질문은 왜 하느냐고 눈짓을 하는 친구-

물병에 물이 가득한데도, 괜히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는 친구.../

아닌 척 하고 있어도, 그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해졌다.


그렇지. 모두가 궁금했겠지.

무엇보다, 누구보다... 그녀가 궁금했겠지.

그녀 말이다.

지금, 이런 질문 따윈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의 대답은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이-

불판 위에 양파를 계속 집어 올리고 있는 저 여자./


입술에 힘을 꽉 주고,

자기도 모르게 왼쪽 볼을 실룩거리고 있는 저 표정은,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가끔 회사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게 될 때라든가,

그가 그녀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시켜줄 때에도, 자주 보던 표정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오해할 수도 있겠지.

특히나,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를 만났던 것은,

아무리 그녀가 편한 사람이라고 믿었어도, 하지 말았어야 될 일이라는 걸,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야 깨달았다.


이제, 그들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연인은 무슨... 너넨 그런 친구 없어? 같이 영화보고 술 마시는 친구?

 그런 친구 하나 쯤... 요샌 기본 아니야? (그녀에게) 안 그래요?”


>>


(여) 한 친구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어쩐지,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한 금기의 문을 열기라도 한 것처럼,

불안한 기분이 온 몸에 엄습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짜릿한 호기심도 동시에 일어났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침착 하려고 애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가득한 불판 위에,

본인이 계속해서 양파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 할 만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녀와 그를 번갈아보며

지금의 이 분위기를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침묵이 흐르고서야, 그가 대답했다.

“(남) 연인은 무슨...”

거기까지만 듣고, 그 이후에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를 불쌍하게 보고 있는 건지,

그녀의 반박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제야 자기가, 불판 위에 양파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테이블 위에 집게를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이 어색한 침묵을 깨야 했다. 


“(여) 참! 토요일에 여섯 시 영화 예매했어요. 

 저녁은... 영화 보고나서 먹죠?”


말끝이 떨리지 않았기를...

서운한 마음같은 건, 묻어나지 않았기를...

그래서, 두 번 다시 그와 영화를 보러가지 못하는 일 같은 건, 생기진 않기를.../


이미 구워진 양파는, 매운 향기가 이미 다 날아 가 버렸을 텐데도,

코끝이 찡, 하게 매워졌다.


>>


세상 끝까지 달려도, 결코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

그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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