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열시십분의 풍경
모든 것이 찬란하고, 화려한 계절.
남자는 유독 사계절 중, 봄을 싫어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마, 대학 입시에 실패했던 그 겨울 이후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봄이 되면 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과 긴장으로 들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기분을,
따뜻하고 화려한 봄의 기운이 감싸줬던 것 같은데-
그 해 봄은 달랐다.
모든 것이 형형색색 빛나는데,
남자 혼자만 덩그러니, 회색인 기분.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즐길 수가 없던 그 봄 이후,
남자는 봄이 싫었다.
모든 것이 찬란하고 화려한 시즌.
남자는 요즘, 캐럴도 듣기 싫고
트리의 전구가 반짝이는 것도 밉다.
뭐가 좋은지 환해 보이는, 사람들 표정도 싫다.
그래도 남자는,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 나섰다.
가슴에 이력서를 품고서 /
어느 순간 봄을 좋아할 수 있게 됐던 것처럼
어느 순간, 이 시즌도 좋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무 것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 틈을 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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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정하의 <바람속을 걷는 법>은
삶의 바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가는 것이다.>
삶의 어느 골목에 바람이 불 때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되뇌인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헤쳐 나가는 것’/
그리고, 더 큰 바람이 불어올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시의 마지막 구절도, 한 번 더 외워본다. .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