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늬 Mar 01. 2020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걸 알리 없는 너에게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불판 위의 고기를 가지런히 뒤집는 그녀를 보다가,

하소연하듯, 그가 말했다.

"하.... 내가... 너 같은 여자를, 만났어야 되는 건데..."


왠지 물어봐주길 기다리는 것 같길래,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랑, 잘 안 돼?"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나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애써 관심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알게 뭐야-"


이미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그녀는,

목소리 톤 하나에서도 의미를 읽어낼 줄 안다.

그의 대답을 듣고,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별다른 약속도 없었던 그녀는,

침대위에 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시간되면 얼굴이나 보자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같은 날, 여자 친구가 아닌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뭔가 심각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그는 방금, <너 같은 여자를 만났어야 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말에, 깊이 묻어둔 희망이, 손톱만큼, 고개를 들었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랑 싸웠거나, 헤어졌거나...

두 번째이길 은근히 바라며,

조심스럽게 그녀가 물었을 때, <알게 뭐냐>는 그의 대답.../


그 대답의 의미는, 단순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으나, 그가 여자친구에게 삐져있다는 뜻-/

그녀는, 실낱같이 삐져나오려던 희망을, 다시 꾸욱- 눌렀다.


....


그 때부터 그는 아마, 그녀를 앞에 두고, 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여자들은 원래 그래?"라는-

하소연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 그의 얘기 중간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몇 번쯤 나왔던 것 같고,

"차라리 이대로 헤어질까?"

그녀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던 것 같고-

"그녀랑 헤어지면 잘 살 수 있을까" 혼자 물었다가,

"쉽지 않겠지.." 혼자 대답도 했다가-


두 시간 가까이, 그와 마주보고 있었으나,

그는 사실, 그녀와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의도 하에,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얘기를... 아니 하소연을 하는 동안,

그녀는 불판 위의 잘 익은 고기들을, 

그의 몫까지 열심히, 먹어치우며,

그의 얘기를 듣는 척했기 때문.


그가 얘기를 거의 다 끝냈을 때,

추가로 주문한 고기까지 다 먹어버린, 그녀도 슬슬 배가 불러왔다.

"할 말 다 했지? 난 배불러. 그럼 가자.

 넌 어디로 갈래? 아- 애인 만나러 가야지. 그래봤자 안 헤어질 거잖아."


민망해서 당황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자신을 다독였다.


밥도 내가 더 많이 먹고, 좋은 옷도 내가 더 많이 입고-

내가 낼 수 있는 욕심은 유치해도 이게 전부니까, 그래야겠다고.

그래야만 조금, 공평해지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이후의 내 사랑은 당신과 '같거나' 혹은 '다르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