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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an 24. 2017

일기

2017년 1월 24일

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 중 일기 쓰는 게 가장 곤혹스러웠다. 뭔가 특별히 다른 일이라도 있어야 술술 써 내려갈 텐데 이놈의 일상에는 색다른 사건 따윈 생기지 않았고 매일이 비슷한 일상을 다르게 쓰는 방법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매일이 똑같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비슷했는데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을 기록한다는 게 그 어린 나이엔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래서 언제나, 누구나가 그렇듯 방학 마지막 날에서야 부랴부랴 밤을 새우며 일기장을 채웠다.


난 글쓰기를 참 좋아했는데. 상도 여럿 받았었는데. 왜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 그렇게 한 자 쓰기가 어려웠던 걸까.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엔 해마다 일기장을 샀다. 일기도 거의 안 쓰는 주제에 11월부터 내년에는 어떤 일기장을 살까 고민했다. 그렇게 고심해서 산 일기장은 보통 3개월, 길면 반년을 채우고 고스란히 책장에 꽂혔다. 그리고 또 겨울이 다가오면 '그 일기장은 이런 게 불편했으니 이번엔 저런 걸 사야겠어'라며 또 새로 나온 일기장들을 들춰보기를 반복했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그냥 일기장을 사는 행위를 즐겨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지 싶다.


어차피 안 쓸 거 돈 쓰지 말자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밤새며 일해서 번 돈을 그렇게 낭비하는 게 아까웠던 거지.


언제나 나의 일상은 매일이 비슷했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이가 서른 줄을 넘어버린 지금도 똑같다. 하긴... 일상의 뜻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인데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똑같은 매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매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거의 대부분이 정해진 듯 똑같이 흘러가지만 그 똑같은 것을 보고도 매일을 다르게 느낀다. 똑같은 하루에서도 나의 생각이 바뀌고,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변한다. 지금 느끼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일기 숙제를 좀 수월히 하고 해마다 사던 일기장을 낭비하지 않고 빼곡히 채웠을 텐데.


오늘의,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작년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5년 전의 나는, 10년 전의 나는. 그리고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지금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조금 아쉬워져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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