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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y 12. 2023

몸도 마음도 쉬는 오월의 하루

서울시청 광장 '책 읽는 서울 광장'에 참여하며

울타리에 빨간 장미가 매혹적인 계절, 빛나는 오월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절대 허언은 아닌 듯하다. 그동안 지루한 시간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퇴직 후 두 달이 되어 가는데 의외로 여유를 느낄 틈이 별로 없다.

오늘만 해도 오전부터 바쁜 일정이 빼곡했다. 전날 시골에 다녀와 성북도서관에서 열린 독서 토론회에 참석을 했다. 성북구 한 책 사업에 운영위원으로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점심약속이 있어서 독서 모임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나와야 했다. 한 달 전에 만나기로 한 전 직장 동료들약속이었다. 저녁은 아내와 만나기로 했고 그 이후에는 합창단 정기 연습이 있었다.


사실 그다지 중요한 일들이 아니지만 일정이 이어져 마음도 바쁘고 몸도 따라 분주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음에도 저녁에 아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 빈 시간이 생겼다.

시내에 나오면 의례히 성공회 수녀님을  뵙는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은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인근에 위치한 서울시청 도서관에서 들고 나온 책을 읽으려고 갔다. 열람석에 앉아 책을 읽는데 장애우가 규칙적으로 괴성을 질러 그 자리에서 읽기가 어려웠다. 서울시민청으로 자리를 옮겨 1층 로비에서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노인 두 분이 곁에 앉으시더니 큰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도 일어나야 했다.


때마침 시청 광장에서 '책 읽는 서울 광장'이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너른 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원색의 쿠션이 멋들어졌다. 사람들은 양산을 쓰고 그늘 아래 쿠션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북유럽 사람들의 여가를 보내는 것 같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음악 공연도 있었다. 소규모 예술 단체들이 참가하여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해금과 거문고의 조화로운 앙상블이 귀를 즐겁게 했다.

나도 참여하려 양산과 카우보이 모자를 빌렸다. 공연하고 있는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폭신한 쿠션에 기대고 누워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펼쳤다. 성북구 한 책 사업에 추천된 10권의 책을 읽어야 했기에 책을 가지고 다니며 부지런히 읽어야 했다. 소설이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다행히 페이지가 넘어 갈수록 흥미가 생겼다.  

해금 공연에 이어 재즈공연이 이어졌다. 자유롭고 기분 좋은 선율에 마음이 절로 흥겹다.  잠시 책에서 시선을 거두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광장 주위 빌딩사이로 푸른 하늘이 떠 있고 가끔 비둘기들이 하늘을 난다. 조금은 무더웠지만 바람이 지나며 더위를 식혀주었다. 지금 여기가 참 좋다.

아름다운 오월을 그냥 흘러가게 둔다면 너무 아까운 일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벤트에 참여를 해보자. 거창한 것도 좋겠지만 이런 소소한 작은 일들이 조미료처럼 일상에 감칠맛을 더한다. 마음에 여백을 남기듯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휴식이라는 것이 몸이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도 정신도 쉬어야 진정한 휴식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시청 광장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진 향연을 온전히 누렸다. 빛나는 오월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아름다운 계절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없어진다. 가기 전에 꼭 붙들고 누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자.


#에세이 #책읽는서울광장 #여가 #오월 #여유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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